▲해상자위대 구레사료관의 '대동아 전쟁' 표기 '대동아 전쟁'은 미국과 영국 등을 상대로 한 1941년 12월의 개전이 아시아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표기이다.
박광홍
그러나 대동아 전쟁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어 보인다. 대동아 전쟁 표기를 고집하는 출판물들은 계속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는 자위대 시설에서마저 대동아 전쟁이라는 표기가 당당히 방문객을 맞이한다. 일본인이 강요당하고 있는 '자학사관' 극복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일본회의'(日本会議)와 같은 조직에게 있어서도, 대동아 전쟁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칭호다.
그렇다면, 이토록 견고한 대동아 전쟁의 신화는 어떻게 빚어지게 된 것일까. 그 시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1941년 12월의 개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산되어야 할 신화
제국 일본이 1941년 12월에 전쟁을 시작한 배경에는, 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가 일본을 포위해 고사시키려 한다는 ABCD포위망(A: America/미국, B: Britain/영국, China/중국, Dutch/네덜란드) 위협론이 있었다. 즉, 동남아시아에 이권을 보유하고 있는 열강들이 중국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들을 점령함으로써 서구열강의 대중국원조 루트를 차단하고 나아가 동남아의 천연자원들을 확보하여 궁극적으로는 중일전쟁에서 승리하자는 발상이었다.
중일전쟁이 본격화하고 미국의 금수조치가 내려지면서 더 이상의 전쟁수행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물자부족에 빠진 일본에게 남은 선택지는 중일전쟁의 포기 혹은 ABCD포위망 돌파 뿐이었다. 이미 중국전선의 감당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서구열강에 대한 개전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육군은 군사정변까지 거론하며 완강하게 중국전선에서의 철군을 거부했다. 내각은 폭주하는 군부를 제어할 힘이 없었고, 해군은 바다를 주전장으로 하는 새로운 전쟁을 기회로 보았다. 말도 안되었던 전쟁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시작됐다(관련기사:
일본이 풀어야 할 괴로운 '근본 질문').
즉, 1941년 12월에 제국 일본이 서구 열강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것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를 빼앗아 그 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침략을 성공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제국 일본은 '서구 열강을 축출하고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라는 프로파간다를 내세워 침략의 야욕을 숨기고 개전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1941년 12월 10일, 제국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는 이 전쟁의 칭호를 '대동아 전쟁'으로 공식 결정했다. 이 날은 일본 해군이 말레이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격파한 날이기도 했다. 최신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필두로 구성된 영국해군 Z기동함대는 일본해군의 공습을 얻어맞고 무력하게 말레이 바다에 수장됐다.
일본군은 <영국동양함대 궤멸>이라는 군가까지 급조해 배포하며 말레이 해전의 승전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제국주의 침략을 거듭하며 아시아 각국을 수탈했던 영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것은, 일본이 주장하는 아시아 해방의 대의를 뽐내기에 좋은 소재였다. 이틀 뒤인 12일, 제국 일본은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전쟁의 목적으로 공식 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