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
최현정 제공
최근 1년 사이 MBC 전·현직 아나운서들이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있다.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도 그중 하나다. 최 전 아나운서는 지난 11월 17일 <유일한, 평범>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가장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20~30대 시절을 지나, 생의 2막을 준비하며 느낀 단상을 느리지만, 꾸준히 일기처럼 담았다.
책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일 서울 용산역 안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를 만났다. 다음은 최 전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유일한, 평범>의 프롤로그를 보니 책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신 거 같던데 막상 출간되어 나오니 어떠세요?
"저는 막연하게 제 인생이 작가로서 새롭게 열릴 거로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도 달라진 건 없고 다만 책을 건네주겠다는 핑계로라도 여러 사람에게 다시 연락해 보죠. 제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에도 그랬고 아이 키우느라 많은 사람하고 교류를 못 하고 지냈었는데 책을 내면서 조금 더 여러 사람하고 다시 연락해보고 안부 인사 건네는 것이 좋았어요."
- 처음 책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제가 2년 넘게 그래도 매달리고 있던 게 이렇게 결과물로 나오니까 큰 숙제 마무리한 기분 홀가분하고 반갑고 이거 내가 쓴 책이 이렇게 손에 잡히는 유형으로 남는다는 게 한편으로는 조금 겁이 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 왜 겁이 났을까요?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증거가 돼서 남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나중에 말한 것을 번복하고 싶을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생각한 것들이 남아 있는 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는 이 책을 어떤 눈길로 바라볼까 이런 것도 조금 궁금해지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어요?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실제로 써보기도 했는데 한 편 완성하기도 쉽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유튜브 콘텐츠를 보시고 이런 콘텐츠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묶어보면 어떻겠냐고 한 두세 군데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덜컥 계약했어요. 그냥 하고 싶었던 일인데 제가 자발적으로 잘 못 했던 걸 제안해 주시니까 너무 반갑고 고맙더라고요."
- 원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나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은 늘 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깜냥이 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꿈을 무척 깊은 곳에 묻어두고만 있었던 것 같아요."
- '빠르게 잊힌 아나운서'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더라고요. 근데 이름 말하면 알지 않나요?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어쨌든 아쉬움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한켠에 늘 방송을 조금 더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기회나 방법이 더 많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아쉬운 마음은 늘 가진 것 같아요."
"모든 것들이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 호칭에 대한 얘기도 있던데 뭐라고 불리는 게 좋으세요?
"가장 정확하게는 그냥 별다른 호칭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최현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가장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떤 역할을 제가 수행한다고 하면 행사에 사회를 보든 혹은 방송에 출연하든 그럴 때는 그냥 예전처럼 아나운서라고 불리는 게 가장 편하고 저도 좋아요."
- 출산 후 육아하며 세상에 나오기 두려운 부분이 있었던 거 같은데.
"두려웠다기보다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내가 세상 돌아가는 걸 그때그때 다 파악하지 못하고 동떨어져서 지내는 시간 동안 세상이 훨씬 더 빠르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고 거기 내가 들어가기에 속도를 빨리 높이지 않으면 저기 들어가기가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 세상에 나와보니 어때요?
"제가 생각하는 세상이라는 것도 너무 빨리 돌아간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냥 그 안에도 여러 세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저의 속도도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거에 비해서 너무 느린 것 같다고 느끼지만 느리게 돌아가는 영역도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책이 조금 느린 영역이라면 느린 영역일 수 있고 다 디지털화되는 중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니즈도 분명히 있고 그래서 지금은 또 저의 세계를 나름대로 구축해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책에 보니 난임 과정부터 출산까지 쓰셨던데 당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힘들었겠다란 이야기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근데 사실은 너무 힘들지는 않았죠. 물론 호르몬제 맞으면 신체적으로도 반응이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으니까 어려움도 있고 아이를 늦게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초조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렇게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요즘엔 의학이 워낙 발달해 있기 때문에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면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시기가 불행하다거나 너무나 큰 고난이었다거나 이렇게 기억되지는 않아요."
- MBC 170일 파업 이야기도 나오던데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떠세요?
"제가 회사 그만두던 당시에 진짜 하루 종일 들었던 노래가 '걱정 말아요. 그대'인데 그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었어요. 지금도 사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음 아픈 지점들이 있는데 그냥 지나간 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죠.
이 글을 뺄까 말까를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너무 철 지난 이야기를 이제 와서 푸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요. 그런데 저의 인생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어떤 분기점이었던 것도 맞아서 관련한 글을 한 편 넣기는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들이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을 아는 것과 개인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