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파리시청 앞 광장은 잠깐 반짝이는 '벨 에포크'

마음만큼은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기를

등록 2021.12.21 09:53수정 2021.12.2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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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청 앞에 설치된 썰매 썰매타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모두 즐겁다
파리 시청 앞에 설치된 썰매썰매타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모두 즐겁다박소영
   12월 19일(현지 시각), 파리 4구에 위치한 파리 시청 앞 광장(Hôtel de Ville)은 놀이 공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층으로 된 회전목마, 썰매, 암벽 등반 등 놀이 기구와 크레페, 프레첼, 솜사탕, 핫초코, 뱅쇼 등 각종 먹거리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높여주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성탄절 노래는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이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반짝이는 파리(Paris Scintille)'라는 테마로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약 한 달 간 파리 시청, 바스티유 광장 등 파리 시내 곳곳이 반짝인다. 어둠이 내리면 파리 시청 건물 전체는 파란색으로 물들고, 회전목마를 비롯한 시청 앞 광장이 반짝반짝 빛난다.

놀이기구 탑승은 무료다. 부모님 손을 잡고 모여든 아이들은 신이 났다. 회전목마 1회에 보통 2유로(한화 약 2600원) 정도 하는데 약 한달 동안은 무료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타고 또 탄다. 필자도 아이와 함께 말, 자동차, 마차 등 여러 개를 탔다. 아이는 추위 속에서 기다리는 것이 지루할텐데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잘도 기다린다. 회전목마를 곧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은 추위도 지루함도 모두 이겨낼 만큼 강력했다.
 
좋은 시절이라고 적혀있는 회전목마 회전목마에 좋은 시절(La Belle Epoque)라고 적혀있다. 회전목마를 타는 동안만큼은 과거 코로나 19가 없었던 좋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좋은 시절이라고 적혀있는 회전목마회전목마에 좋은 시절(La Belle Epoque)라고 적혀있다. 회전목마를 타는 동안만큼은 과거 코로나 19가 없었던 좋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박소영
 
기다리는 동안 회전목마를 자세히 보니 '회전목마, 좋은 시대(Carrousel, La Belle Époque)'라고 씌여있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 정치적 격동기가 끝는 후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로, 산업혁명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문화예술이 번성하고 풍요로우며, 평화가 이어진 시기를 일컫는다. 작년, 한국에서는 '카페 벨 에포크'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행복하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회전목마를 타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와 내가 코로나 19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그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눈 대신 하얀색 천으로 덮힌 대형 미끄럼틀 위로 묵직한 튜브를 타고 내려가는 썰매 타기는 단연코 인기였다. 줄이 길지만 이쯤은 기다릴 수 있다는 듯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썰매를 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올라가는데 눈 앞에 펼쳐진 파리 전경이 아름다웠다. 파리 시청 옆에는 세느 강이 흐르고, 강 반대편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2019년 4월, 화재로 인해 첨탑이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다. 첨탑 없는 대성당의 모습이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현실이 코로나 19 상황과 함께 더욱 내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하지만 가라앉은 마음도 잠시, 다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니 파리 시청 앞 광장에 가득 울려퍼지는 깔깔 대는 아이들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 파리 하늘처럼 흐린 회색빛 마음이 다시금 반짝이는 금빛 은빛으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무서울 것 같아서 망설이던 필자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튜브에 엉거주춤 앉았는데 슝하며 순식간에 내려가는 썰매는 막혔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리는 듯했다. 
 
공사중인 노트르담 대성당 센 강 넘어 한창 공사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인다.
공사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센 강 넘어 한창 공사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인다. 박소영
 
음식은 경험이라 했던가. 솜사탕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에게 오늘은 마음껏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에 3유로(한화 약 4000원)하는 솜사탕을 경험해보라고 사주었다. 몇 입 먹고 끝난 솜사탕이었지만 연핑크빛 구름에 얼굴을 비벼보기도 하고, 수염을 만들어 산타클로스로 변신해보기도 했다.  

비눗방울을 크게 만들어서 하늘로 띄워 올리는 아저씨 덕분에 광장 앞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따라 다니며 터트렸다.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님과 연인들도 미소가 가득했다. 파리 시청 옆에는 BHV 백화점이 있다. 작년에는 이탈리아가 테마였는데 올해는 스위스다. '정상에서 크리스마스를(Noël au Sommet)'이라는 주제로 백화점 쇼윈도에는 알프스 정상에서 흰 곰들이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연출해 놓았다.  

12월 19일(현지 시각), 프랑스 일일 확진자 수는 48,473명으로 집계됐다. 현실의 숫자와는 상관 없이 파리 시청 앞 광장은 다른 세상이다. 코로나 19를 생각하면 모두 이곳에 나오면 안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2021년이 저무는 12월 중순, 온가족이 함께 하는 유럽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현실보다는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만끽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고 소중해보였다. 


한국은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들어갔다. 추운 날씨 만큼이나 모두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다. 네덜란드는 12월 20일부터 내년 1월 14일까지 전국 봉쇄령이 시행된다. 프랑스도 언제 곧 봉쇄령이 내려질지 모른다. 어린이 백신 의무화 및 백신 여권 반대 등과 같은 이슈로 프랑스도 연일 어지럽다. 

파리 시청 건물 앞에 설치된 올림픽 오륜기 조형물이 크리스마스 트리 사이로 보였다. 2024년 파리에서 올리픽이 개최된다. 얼마전 파리시는 2024 올림픽 개막식을 세느 강 위에서 보트를 타고 전 세계 각국 선수들이 입장하는 다소 파격적인 최초 야외 개막식 안을 발표한 바 있다. 2년 후에도 또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그런 일은 결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여전히 힘들지만 우리 모두 마음만은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파리시청 #파리 #프랑스 #크리스마스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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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살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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