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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킹 실수 한 번에 날아간 3년... '수능 4교시' 답안지의 저주

탐구 2선택 때 1선택 답안 수정 알리자 시험 무효... 3년간 매해 100건 이상 발생

등록 2021.12.22 07:36수정 2021.12.2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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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수능 탐구영역 OMR 답안지 견본.
2022년 수능 탐구영역 OMR 답안지 견본.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경기 구리시에 사는 정지민(19·가명)양은 지난 11월 18일 수능을 치르고 일주일 동안 심각한 구토 증세와 두통에 시달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감독관에게 마킹 실수를 사실대로 알렸다는 이유로 즉시 수능 무효 처분을 받은 억울함" 때문이다.
 
사건은 '마의 4교시'라 불리는 수능 탐구영역 시간에 벌어졌다. 탐구영역 시간엔 선택한 2개 과목을 30분 단위로 연이어 보는데 답안지가 분리돼 있지 않다. 각 과목 답안 작성표가 답안지 한 장에 좌우로 배치돼 있다(위 사진 참조). 4교시는 이 때문에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실수를 할 위험이 가장 높다.

정양은 4교시 탐구영역 1선택 과목은 생활과 윤리, 2선택 과목은 사회문화를 선택했다. 수능 규정상 2선택 과목 시험 중에 1선택 과목 마킹에 손을 대서는 절대 안된다. 그 사실을 감독관이 인지하는 순간 부정행위자로 간주돼 시험이 무효 처리된다.
 
정양이 이 경우였다. 정양 4교시 탐구영역 2선택 과목인 사회문화를 보는 중에 '13번 문제' 답안 마킹이 잘못된 걸 뒤늦게 확인했다. 다급하게 수정테이프로 답지를 수정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선택 과목인 생활과 윤리 과목 답안 표의 13번에 손을 대버린 것.
 
정양은 손을 들고 감독관을 불러 자신이 마킹 실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양 2선택 과목 시험 중에 1선택 마킹을 한 것이기 때문에 부정행위자로 간주돼 수정부정행위심의 대상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11월 29일 심의위로부터 '당해 시험 무효' 처분을 받았다. 정양이 고교 3년간의 고생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듯한 심적 고통에 한 동안 집 밖을 나서지 못했던 이유다.


매년 동일한 상황 반복... 이 방식이 최선일까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 시험장에 입실한 수험생들에게 감독관들이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 시험장에 입실한 수험생들에게 감독관들이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수능 4교시엔 두 개 탐구과목 시험을 한꺼번에 치르지만, 다른 과목 답안지를 수정하는 행위는 상황이나 의도를 불문하고 엄격히 금지한다. "응시 과목의 시험 종료령이 울린 후에도 계속해서 종료된 과목의 답안을 작성하거나 수정하는 행위"를 부정행위로 정하는 수능 부정행위자 처리규정 7조6호가 그 근거다.
 
이 때문에 여러 과목 답지를 한 장의 OMR 카드로 몰아넣은 게 근본적인 원인인데, 책임은 수험생에게만 묻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올해부터 한국사와 탐구영역 답안지가 분리 시행된 건 비슷한 지적이 계속된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해까지 한국사와 탐구과목 등 세 과목 답안 작성표가 한 답안지에 배치돼 있어 정양과 같은 수정 실수가 계속 발생하자 교육부는 억울한 부정행위를 막는 취지로 올해부터 두 답안지를 분리했다.
 
4교시 답안지 분리나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요구하는 청원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9년 청원자는 "4교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응시자의 단순 착오, 실수에 의한 것이란 점, 단순 실수로 응시자의 오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점,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4교시 운영 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현행 운영방식에는 문제가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0년 청원자도 자신을 "행정편의주의의 희생양이지, OMR을 악용하려고 한 부정행위자가 아니"라고 호소했다.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는 전체 부정행위 건수의 절반에 달한다. 2016년 189건 중 86건, 2017년 197건 중 69건, 2018년 241건 중 113건, 2019년 293건 중 148건, 2020년 253건 중 106건 등이다. '종료령 후 답안 작성' 건수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순서대로 각각 16건, 29건, 40건, 50건, 48건 등으로 집계된다.
 
교육부는 2019년 당시 이같은 논란에 '답안지를 3장으로 분리하면 채점 기간이 5일은 더 늘어나 입시전형 일자가 3월 첫째 주까지 가거나 중간에 추가모집 기간을 줄여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교육부 대입정책과 관계자도 17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행정법규 위반에 대해 가하는 제재조치는 객관적 행위 사실에 가하는 것으로,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부과될 수 있다는 건 그동안의 판례에서도 확인된다"며 "수험자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객관행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부정행위 주의사항은 시험 전부터 반복적으로 안내되고 시험 당일에도 안내방송, 감독관들이 고지를 해주며, 고사장 안내문에도 유의사항으로 기재돼 있다. 답안지를 봐도 명확히 구분이 돼있다"고 덧붙였다.
 
정양의 어머니 윤아무개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 6일 교육부에 수능 무효 처분 이의 신청서를 냈다. 여기서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양은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거쳐야 한다.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4교시 답안 마킹 실수로 부정행위자가 된 한 2020년 수능 응시자는 교육부의 무효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그해 4월 '관계 법령에 따르면 응시자의 행위는 부정행위로 간주되고 행정법규 위반에 따른 제재조치는 객관적 사실에 착안해 가하는 제재'라며 처분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윤씨는 "부정한 목적이 있었다면 감독관에게 실수를 먼저 밝히지도 않았을 텐데, 수험생이 너무나 정직해서 수능 무효라는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의가 없음에도 결과가 지나치게 가혹하다. 학생은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단 생각까지 가지게 된다. 제도가 개선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질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능_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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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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