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지나야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져서 그런 걸까. "동지를 지나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도 거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전 찻집 연다연 사진 제공
김은영
동지, 콩지. 속으로 발음해보다 '큭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처음 아이가 '콩지'라고 했을 때 콩쥐 팥쥐의 '콩쥐'를 떠올렸으니, 동지를 콩지라고 들은 아이나 콩지라고 하는 걸 콩쥐로 알아들은 나나 비슷하구나 싶고.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는 말에도 동지를 떠올리지 못했다니 얼마나 무심하게 계절을 보내고 있는 건가.
동지를 따로 챙기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보니 동지는 '태양의 부활'을 의미해 설 버금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다고 한다. 동지를 지나야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져서 그런 걸까. "동지를 지나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도 거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의미를 알고 나면 사소한 일이나 명칭이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을 기점으로 낮이 가장 짧아졌다 다시 서서히 길어진다는 것, 태양의 위치가 변하고 그래서 밤과 낮의 길이가 계속 바뀐다는 엄연한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매일이 엇비슷해 보이지만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어제와 오늘, 태양의 고도가 바뀌었고 그래서 낮의 길이와 기온이 달라졌다는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평소 의식하지 못하거나 당연시 여겨왔던 사실이 환기되면 삶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 살아난다. 작은 사실일지라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기념하는 것과 그냥 넘기는 것 사이에는 그만큼의 낙차가 있다.
아이때문에 이런 변화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동지만 해도, 아이가 '콩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수 있다. 어릴 적만 해도 동지엔 팥죽을 먹고 정월대보름엔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깨는 게 반드시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는데.
작게나 크게나 그런 이벤트를 통해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인간의 삶이 존재함을,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진리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 같다. 삶이 인간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세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고 그 힘이 다스리는 어떤 진실 혹은 순리 속에서 인간의 삶도 흘러간다는 것을.
동지가 되면 낮이 가장 짧아지고 그러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물이 언다. 그리고 모든 동식물이 겨울잠에 들어간다. 하지만 때가 되면 얼었던 물이 녹고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온다. 경칩(驚蟄)이다. 이렇듯 누군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해주고 있어 우리는 그저 매일이라는 일상만 챙기면 된다는 게 새삼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하루의 일과만으로도 아등바등하는 게 인간의 삶이니까. 거대한 힘의 존재를 느끼고 인간의 미약함을 알면 세계의 순리 앞에 겸손해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음에 안도하게 된다. 오늘의 작은 의미에 기뻐하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을 품어 본다.
예부터 동지에는 일 년의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일가친척이나 이웃과 모여 동지팥죽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는데 그랬던 전통이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로 이어져 내려왔나 보다. 안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기부를 위해 쌀을 모금하던데 잊지 말고 챙겨 보내야겠다.
동짓날 팥죽을 끓이지는 못하겠지만, 어디서 한 그릇 사 먹기라도 해 봐야지. 동지의 의미를 나누며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사이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것을 챙기는 데서 기쁨은 시작되는 법이니까.
명동에도 나가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