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마당. 선대본 구성원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아야 했는데....
노일영
금촌댁에 대한 증오의 확장성은 소평댁의 마음에서 한계가 없었다. 어쨌든 부산댁의 이사에 관한 소문은 여론 조작을 위한 유언비어로 판명이 난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부산댁을 주저앉히며 반장이 말했다.
"사무장, 뭐 하고 있어! 얼른 부산댁에게 무릎이라도 꿇어. 우리한테 능지처참 안 당하려면."
"죄···죄송합니다, 비서실장님."
뜬소문이라도
남편에 관한 소문을 물어 온 것도 소평댁이었다. 근본도 없고 집도 절도 없어서 처가살이나 하는 못난 놈에다 국가 공인 불효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는 풍문이었다. 떠도는 입소문이 모조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은 있지만 절이 없는 건 사실이었고, 국가 공인은 아니지만 집안 공인 불효자인 건 맞는 말이었다. 처가살이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 내 눈에 못난 놈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살짝 근본 없이 굴 때도 꽤···. 하지만 어쨌거나 소문에 등장하는 남편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건 틀림없었다.
"욕심이 많아가꼬 제비 다리라도 뽀사뿔 놈이라 카더라꼬."
소평댁은 무척이나 신난 모습이었다. 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의외로 남편은 낄낄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반장과 우 이사, 부산댁 언니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반장이 입을 열었다.
"이런 얘기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웃지만 말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뭐,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지만, 투표를 앞두고 이런 얘기가 도는 건, 아무래도 저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뭐 그렇다고 제가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웃으면서 동네 한 바퀴 돌 수도 없는 거고. 이런 종류의 유언비어는 그냥 무시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대응이 최고의 대응인 거 같은데요."
다들 갈피를 잡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소평댁이 박 이장을 비롯해서 무산댁, 금촌댁에 관한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최근의 일에서부터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도 있었다. 소평댁은 뭐랄까 '치부 백과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가슴에다 한 땀 한 땀 이야기를 새겨넣는 사람처럼 보였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믄 아무꺼나 골라보라꼬. 내가 네발이 타고 동네방네 확 뿌리뿔 끼이까네."
남편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소평댁의 달콤쌉싸름한 제안에 남편의 마음이 동요하며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동자 너머에서 계산기의 숫자들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우 이사를 제외하고.
"소평댁 누님, 뭐 하자는 겁니까! 그런 소리는 꺼내지도 마세요!"
"와 안 된다꼬? 저짝이 그 카믄 우리도 이 캐야지!"
"헛소문 퍼트리면, 우리도 저쪽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 혼자 성인군자 되뿌라. 내는 잡년이 되가꼬 우리 일영이 이장 만들어뿔 끼이까네. 내는 금촌댁 그년이 선거에서 이기는 꼬라지는 죽어도 못 본다꼬."
소평댁에게 투표는 금촌댁과의 일대일 자존심의 대결이다 보니, 이장 선거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선거 같은 중요한 선택의 문턱에서도 최종적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몫인 듯했다. 소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두고 선대본은 두 그룹으로 갈라졌다.
소평댁, 반장, 부산댁 언니, 남편은 뜬소문이라도 만들어서 공급하자는 쪽이었고, 우 이사와 나는 소문 공장의 가동을 반대했다. 사실 내 마음속에서도 저쪽 편에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 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참기로 했다. 내 선택이 위선인지 도덕적·윤리적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경우 위선과 선을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우 이사의 결정이 위선이 아님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