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관계병사는 취사병과 의무병의 모태가 된다.
남희한
부모 자식 간의 규칙
인간 세계를 모사한 코딩 세계이지만 다른 것이 있다. 코딩 세계에서는 부모 자식 관계를 맺은 객체들 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다는 점이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자신만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코딩 세계의 약속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면, 태생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유전적인 요소는 그대로 물려주고 물려받게 되지만 그 이외의 취미, 관심사, 생활양식, 사상 등은 물려주지 않거나 물려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많은 분란이 생긴다.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좋은 모습만을 본받기 위한, 그 '좋은 것'의 기준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좋은 것'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분란이 커진다. 그리고 부모의 '좋은 것'에 대한 강요나 자식의 '좋은 것'에 대한 거부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좋은 것'에, 이행하기 힘든 부모의 '좋은 것'에 서로 힘들어 한다.
컴퓨터는 서로의 좋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올바르고 좋은 것의 기준은 각자의 몫이다. 부모가 고심 끝에 '선택적'으로 물려주지만 그것이 자식에게는 '대체'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건 기계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기계니까'라는 말은 많은 것이 생략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계는 약속을 잘 지키니까'라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존재의 문제가 아닌 인식과 이행의 문제다. 존중을 바탕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의 이행 말이다.
부모 자신을 위한 존중과 인정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게 어렵지 않게 척척되면 속된 말로 그게 어디 사람인가? 아쉽게도 사람은 이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한다. 뭣 하나 녹록한 게 없다. 도(道)를 닦고 도(道)를 닦고 또 도(道)를 닦고... 우거진 숲을 헤매며 하나씩 겨우 겨우 길(道)을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안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느 부모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려 한다. 그 어려운 걸 하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 부모다. 그래서 기계를 조금 닮아 보자는 거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힘들어 하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함에 있어 앞서 말한 코딩 세계의 규칙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자식은 본받고 싶지 않은 것들은 선별해서 거를 수 있다. 코딩에서는 이를 '재정의'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부모는 적어도 이것만큼은 자신을 닮기 바라거나 자신의 뜻대로 하길 바랄 순 있지만 어차피 자식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