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깜박 거릴 때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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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들어선 나도 외출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아차차!' 마스크를 가지러 다시 대문을 열곤 한다. 핸드폰을 집안 어디에 뒀는지 몰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아침에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저녁 때야 생각나 빨래를 널거나, 어제저녁에 뭘 먹었더라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대화 중에 영화 제목이나 배우 이름이 혀끝에만 맴돌아 괴로울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도 나빠지는구나' 하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지 도쿄대 교수는 저서 <벌써 오십, 마지막 수업 준비>에서 건망증이나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단순히 나이 들어 뇌가 노화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기 때문에, 특정 기억을 끄집어내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뇌 또한 노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신체 기능에 비해 늦게 노화된다. 그래서 신체 기능의 노화를 뇌의 노화로 착각해 '뇌 기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처럼 책을 오래 읽지 못한다"는 것은 나이 들수록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고 눈도 쉽게 피로해지는 등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대개 자신의 뇌가 노화했다고 실망한다.
저자는 무언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현상 역시 나이 먹으면서 심해진다는 것 또한 착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실시한 대규모 실험에서 까맣게 잊어버리는 횟수는 어린이와 어른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어른들이 나이 들어 까맣게 잊는 일이 많다고 느끼는 이유는 시간의 인식이 아이와 다르기 때문이란다. 아이는 '요즘'을 3일에서 길어야 일주일 사이를 잡지만, 어른들은 과거 반년 이상의 경험을 헤아린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보다 중요한) 차이는 아이는 그런 일이 있어도 "또 까먹었네." 할 뿐 의기소침해지지 않다. 반면 어른들은 곧잘 나이 탓을 하며 슬퍼하거나 뭔가 큰 병의 조짐일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이다. (16쪽)"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아침마다 토마토를 먹으며 학교에 갔다. 그날도 토마토즙이 흐르지 않도록 야무지게 먹으며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앞에서 이름표를 검사하던 고학년 언니가 말했다. "얘, 너 책가방은 어딨니?"
나는 고개를 돌려 텅 비어 있는 내 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가방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학교에 간 일은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 지금도 토마토를 보면 슬그머니 웃곤 한다. 아마 지금의 내가 비슷한 실수를 한다면, 치매 초기라며 걱정에 빠지지 않았을까?
의기소침은 그만, 직감력을 잘 활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