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21년 9월 30일 전남 보성군 득량만 간척지의 논이 수확 철이 다가오면서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말로만 농촌을 살리겠다고 얘기한다 해서 농촌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다. 농촌이 스스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5.16 쿠데타 직후 저질러진 반(反)민주적인 조치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풀뿌리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지방자치단체였던 읍·면
시계를 1960년으로 돌려보자.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지방선거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광역지방의원, 기초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을 뽑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하루에 몰아서 선출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때 뽑았던 기초지방의원은 현재와 다르다. 지금은 농촌지역에서 군의원을 뽑지만, 1960년 선거까지는 군의원을 뽑지 않았다. 대신에 읍의원, 면의원을 뽑았다. 군(郡)이 아니라 읍(邑), 면(面)이 기초지방자치단체였기 때문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도 군수를 뽑는 게 아니라 읍장과 면장을 뽑았다.
이렇게 기초지방자치를 한 이유가 있다. 농촌의 경우 읍·면 정도가 지방자치를 하기에 적합단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적을 보더라도 웬만한 읍·면의 면적이 서울의 자치구보다 넓다.
다른 나라도 농촌지역에서는 우리의 읍·면 정도를 지방자치의 단위로 하고 있다. 독일의 게마인데(Gemeinde), 스위스의 코뮌은 농촌지역에선 우리의 읍·면 정도다. 인구가 1천 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도 많다. 일본의 경우에도 비록 통합을 해 숫자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농촌지역 기초지방자치는 우리의 면·읍 정도인 정(町)·촌(村) 단위에서 하고 있다.
이처럼 5.16 이전에 하던 게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형태였다. 비록 초기여서 문제점도 많았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란 본래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정착되기 마련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빼앗은 읍·면 자치권
그런데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쿠데타 세력이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만든 기구였다.
1961년 10월 1일 시행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에서 읍·면을 없애고 군(郡)을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로 규정했다. 즉 읍·면의 자치권을 없애고, 기존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던 군을 지방자치단체로 만든 것이다.
직선으로 뽑던 읍장, 면장을 군수가 임명하는 임명직으로 바꾸었다. 읍·면이 갖고 있던 재산도 군으로 귀속시켰다. 그렇게 한국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면·읍이 사라졌다.
이것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심각하게 잘못된 결정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기구가 이전에 국회에서 만든 지방자치법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것이다. 농촌지역의 기초지방자치 모델에서 완전히 벗어난 '군 단위 지방자치'를 탄생시킨 점도 문제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 읍·면 자치를 복원하지 않고 군 단위 자치를 유지했다. 그래서 지금도 읍·면은 군의 하부행정조직으로 되어 있다. 읍장과 면장은 군수가 임명하는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읍·면에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가 있지만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별로 없다. 농촌지역에서도 군청에 모든 권한과 예산이 몰려 있다. 지역 내에서의 중앙집권체제다.
한편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은 선출직이던 마을 이장도 읍장·면장 임명직으로 바꿨다. 그야말로 풀뿌리까지도 관이 지배하는 체제로 바꾼 것이다. 이것 역시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렇기에 마을총회에서 이장을 뽑더라도 임명장은 읍장, 면장에게 받는다. 평소에는 마을총회에서 선출한 이장을 관례적으로 임명하지만, 마을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간에 갈등이 생기면 이장 임명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사례들도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