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재명·윤석열 후보간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주변에서 '책임총리제'가 연립정부 혹은 단일화 조건으로 언급되고 있다.
책임총리제는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인 인사권을 주는 것이다. 헌법 제87조 제1항 및 제94조에서 정한 국무위원 내지 행정각부의 장에 대한 국무총리의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책임총리제 주장은 타당한가? 아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행정부의 수반임과 동시에 국가의 원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면서도 전형적인 부통령을 두지 않고, 국무총리를 두고 있다. 국무총리의 지위와 관련하여 헌법 제86조 제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에 불과하고 행정의 최종결정권자는 대통령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같은 입장이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중심제의 정부형태를 취하면서도 국무총리제도를 두게 된 주된 이유가 부통령제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유고시에 그 권한대행자가 필요하고 또 대통령제의 기능과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을 보좌하고 그 의견을 받들어 정부를 통할·조정하는 보좌기관이 필요하다는 데 있었던 점과 대통령에게 법적 제한 없이 국무총리해임권이 있는 점(헌법 제78조, 제86조 제1항 참조) 등을 고려하여 총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행정권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귀속되고, 국무총리는 단지 대통령의 첫째가는 보좌기관으로서 행정에 관하여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기관으로서의 지위만을 가지며, 행정권 행사에 대한 최후의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89헌마221 참조).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현행 헌법과는 공존할 수 없다. 오히려 책임총리제는 의원내각제와 친화적이다. 물론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해찬 총리를 임명하고 책임총리제 실험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인 노무현과 이해찬의 신뢰 관계, 여당 소속 책임총리라는 두 가지 조건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여당과 야당 간에 오가는 책임총리제 논의와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86조 제1항).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동의 의결정족수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다(국회법 제109조).
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국회의석 총 300석 중 170여 석을 차지하고 있다. 설령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에 책임총리제 약속을 한들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과 책임총리를 약속하고 단일화를 한다 해도 집권 후 대통령의 인사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 간 갈등으로 국정혼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현행 대통령제 헌법하에서 책임총리제는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다. 더더욱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 간 정치공학적 이해타산 속에서 책임총리제를 섣불리 대선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약속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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