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삶터에서 모두의 평등한 공존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2017년, 일주일 중 6일을 일해야만 했다. 오전에는 사무보조 일, 오후에는 카페에서 일했고, 점심은 이동시간에 짬을 내 먹어야 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나는 학력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상황이기에 좋은 일자리를 바라는 건 '염치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사이버 대학을 다니며 '더 나은 삶'을 모색했다. 이런 삶을 반년 정도 살았더니 알 수 없는 두통과 피곤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2~3일 쉬겠다고 했다가 쫓겨났다.
이전에 콜센터에서 일할 땐, 성희롱이 담긴 고객의 전화를 매일 받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넘어가고 얼른 전화를 더 받으라는 지시와 직장동료의 성추행까지, 한계다 싶어서 일을 그만두었다. 이 세상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그리고 한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일을 하려면 어떤 모욕도 감내해야 한다'는 설득을 가장한 자본의 길들임을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모욕과 불평등, 차별이 당연했던 나의 노동
아플만큼 일하지 않아도 적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성희롱·성추행이 존재하지 않는,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방안에 처박혀서 구직공고만 들여다봤다. 최종학력, 고등학교 졸업. 구직 사이트에 해당 버튼을 넣을 때마다 연봉·시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월 20~40만 원씩 줄어들었고, 복사+붙여넣기 한 공고들은 그 돈이라도 벌고 싶지 않냐고, 저임금·장시간의 노동을 하면, (너 같은 사람도) '능력'만 키우면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손짓했다. 이 직장에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아니 적어도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차례 면접을 봤다.
야간노동은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월 200만 원'을 보장했고, 그 노동이 나의 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 알지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공고에 쓰여 있는 '남성 우대'라는 말에 포기하고 스크롤을 넘겼고, 때론 오기로 지원해 될 때까지 이력서를 제출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면접, 청년여성노동자인 나를 뽑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은 성차별적인 공고와의 싸움 끝에 나는 다시 불안정고용과 저임금 일자리를 '선택'했다.
내가 성차별을 '덜' 받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밖에는, 당장에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노동으로 이미 지쳐버린 몸을 부여잡고 일하는 내내 나를 잘 재우고 잘 먹이며 아픈 몸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일자리는 여성노동자에게 아주 기본적인, 돌봄에 대한 권리를 신경조차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성평등 노동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
2017년 초,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라고 말하며,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존엄하게 여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큰소리로 떠들며 광장을 누볐다. 그렇게 바뀐 정권에서 미투운동이 촉발되었고, 일터, 학교, 공동체에서 사실상 만연했으나 말할 수 없었던 위력성폭력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때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성폭력 사건을 '가십거리'로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의 일터와 일상의 안전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일터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경험들을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2019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3년 동안 일하고 나니 선명해졌다. 모든 시민들에게 각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영역의 돌봄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내가 행하고 받는 건 다른 문제였다. 생계와 생존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여성노동자에게는 돌봄 받을 권리는 눈으로, 몸으로 새기고 감각적으로 익힐 공간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상사의 눈치를 보고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도 동료들과 관계 맺기가 가능해진 순간들처럼, 머리가 길든 짧든, 살이 찌든 말든, 화장을 하든 말든, 밥을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똑같은 옷을 입든 말든, 입안이 다 보이게끔 웃든 말든. 당위로 있던 말과 생각이 몸으로 체화되는 경험, 그 순간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존중받는다는 것, 우리가 평등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개개인의 삶이 공유될 수 있을 만큼 공유되며, 삶의 맥락 안에서 서로를 보살피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히 누려야 할 나의 권리임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우리의 권리임을 알게 되었다.
성평등 노동은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사회의 차별이 가감 없이 드러났고, 성차별, 노동착취, 기후위기는 사람의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 이윤을 최대치로 뽑아내려고 하는, 속도와 효율만을 쫓고 성장과 개발만이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를 자양분으로 커나갔다. 이러한 경제구조 하에서 돌봄자-노동자-시민으로서 함께 공존하길 희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탈성장과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페미니즘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여성에게만 돌봄노동의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 동시에 돌봄노동이 하찮은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고, 성별에 따라 역할이 분리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그렇기에 노동자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부속품으로 취급받지 않으며, 인간과 자연이 착취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위해서는 젠더관점에 기초한 탈성장과 돌봄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와 피해는 성차별적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해고되었고, 이는 생계의 위험과 함께 돌봄노동의 증가를 가져왔다. 생계와 돌봄이라는 이중삼중의 고충은 여성의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이는 우울증과 자살률 증가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이며, 이 구조가 착취적 경제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을 페미니스트 주권자들은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노동자이자 주권자인 우리는 성차별적인 착취구조를 바꾸고 일터와 삶터에서 동료 시민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선후보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표를 얻기 위해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증오를 선동하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페미니즘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과 (성)불평등의 문제를 '젠더갈등'이라는 말로 가리고 있으며, 성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을 거부하고 있다. 이따위 정치는 틀렸다.
차별과 혐오, 모욕과 불평등은 당연하지 않으며,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일터와 삶터 모두에서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이며, 탈성장과 돌봄중심사회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 성평등한 정부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연재 순서]
① 기후정의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사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② 일터와 삶터에서 모두의 평등한 공존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노헬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③ 페미니즘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
④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⑤ 익숙하지만 낯선 이주여성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남지은(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⑥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백조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⑦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지금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⑧ [지역 2030 페미니스트 활동가 집담회 후기] 지역/청년/페미니스트에게도,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양희주 제주여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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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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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증오... 이따위 정치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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