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이 2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러시아대사관 부근에서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과 우크라이나 유학생, 우크라이나에서 최근 탈출한 교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단기전을 예상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 시민군 의지가 생각보다 강하다. 외신에 따르면 화염병을 만들거나 자원입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신혼부부까지 총을 들었다고 한다. '미스 우크라이나(2015년)' 아나스타샤 레나(31)는 러시아 침공 직후 입대해 화제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자원입대한 시민군은 여성 3만 5,000여명을 포함해 13만여 명에 달한다.
무엇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뭉치게 했을까. 우크라이나 지도층이 보여준 지도력에 있다. 중심 인물은 44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그는 수도 키예프 거리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 영상을 SNS에 공개하며 항전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이 피신을 권하자 "내게 필요한 건 승용차가 아니라 탄약이다(I need ammunition, not a ride.)"며 항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각료들과 함께 EU 가입 요청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텔레그렘에 공개했다. 이런 모습은 지난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에 도착하자마자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비교됐다.
가니는 탈레반이 남부 칸다하르를 함락하자 4일 만에 망명했다. 그는 도피하면서 "카불과 600만 시민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떠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혼란과 공포가 덮쳤다. 미군 군용기에 올라탄 채 탈출을 시도하다 추락하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지도자 역할을 상기시킨다. 민주당 이재명과 국민의힘 윤석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들어 상대를 공격하다 망신을 샀다. 이재명은 "외교에 미숙한 초보 정치인", 윤석열은 "종이와 잉크로 된 협약서만으로는 국가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며 서로를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는 젤렌스키가 NATO 가입을 공언하다 러시아를 자극했다며 사드 추가 배치를 주장하는 윤석열 후보를 비판했다. 하지만 NATO 가입은 30년 넘는 현안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줄곧 NATO 가입을 시도해 왔다. 2019년 2월에는 헌법을 개정해 NATO 가입 의지를 천명했다. 젤렌스키는 이후 대통령에 취임(2019년 5월)했으니 역대 정부 정책을 계승하고, 국민 여론을 따랐을 뿐이다. 윤석열 또한 정전협정을 주장하는 이재명을 공격하기 위해 민스크 협정을 거론했지만 무리였다. 협정은 우크라이나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 2021년 12월 여론조사에서 75%는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대선후보 이재명과 윤석열은 남의 나라 전쟁을 대선 판으로 끌고 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울 점은 따로 있다. 어떨 때 국민들이 하나가 되는 지다. 만일 젤렌스키가 가니 전 대통령처럼 줄행랑부터 쳤다면 국민들은 따르지 않았다. 지도자가 목숨을 내놓고 흔들림 없는 의지를 밝히자 따랐다. 지도력은 말이 아닌 헌신과 행동에 있다.
한국 역사는 혼자만 살겠다고 도피한 부끄러운 지도자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 500년 동안 가장 무능한 왕으로 불러도 부족함 없는 선조와 인조다. 두 사람은 백성과 궁을 내팽개치고 바람처럼 피신함으로써 부끄러운 역사를 썼다. 임진왜란 때는 보름 만에, 병자호란 때는 5일 만에 도피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평안도 의주로 도망쳤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건 1592년 4월 14일. 4월 30일 궁을 떠난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갔다가 아예 명나라로 망명을 시도했다.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이 나라는 폐하의 땅이 아니다"는 만류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은 비겁한 왕이었다. 이후 선조는 정유재란을 다시 겪었다. 인조 또한 무능함에서 쌍벽을 이룬다. 그는 재임 기간 세 번이나 도망갔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였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삼전도에서 가장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렀다. 병자호란 당시는 무려 50만 명이 포로 신세가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끌렸다. 무능한 왕을 둔 대가치곤 참담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실상 무너졌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 조선은 망했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야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일신할 수 있었는데 기신기신하다 결국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선조와 인조가 갑옷을 입고 결사항전을 외쳤어도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을지 궁금하다. 당시 조선은 군사력이 약하기도 했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도주한 지도자 부재가 더 큰 패인이었음은 분명하다.
이재명 후보가 초보라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됐던 젤렌스키는 90% 넘는 지지를 얻으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국제사회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잊지 말자. 우리가 국제금융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을 희생한 김대중이라는 지도자 덕분이었음을.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이 있다"며 왜선 300척을 상대로 승리했다. 며칠 후면 20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누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인지 제대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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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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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를 보며...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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