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물결넘치는 책방 <봄날의 산책>갈매기도 책을 보러오고 책을 들고 날아가는 책방세상
박향숙
군산의 말랭이 마을에 책방 <봄날의 산책>이 문을 열었다. 우연히 지역의 마을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문화예술인 입주 공모전에 통과해서 작은 공간을 얻었다. 함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가치로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이 공간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책방을 선택했다.
'책방' 하면 떠오르는 물리적 공간을 생각하기에는 공간이 너무도 협소했다. 그래도 한 평짜리 책방도 있는데 세 평이면 얼마나 큰가 하는 마음으로 책방을 위한 준비를 했다. 소위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비용, 책 구매에 필요한 비용도 적고 주거에 필요한 각종 공과금도 소액이어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얻은 공모는 정말 행운의 열쇠였다.
책꽂이 짜기와 설치는 환경운동 하면서 톱질하는 후배가 맡았고 투명 창문으로 바라보는 전망이 돋보이도록 꽃길을 걷는 소녀를 그려준 안나샘, 책방 간판과 명함에 들어갈, 책 들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는 정글샘이 그려주었다.
또 벽시계 빗자루 방석 등 공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주의깊게 바라보며 챙겨준 구르미샘, 주문한 책들을 명세표 보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을 척척 하는 정연샘. 이들의 도움과 마음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늘도 책방은 여전히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무슨 책을 팔 거예요? 요즘 동네책방에서 책 사서 읽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요? 색깔이 분명해야 그나마 한두 권 팔려요. 또 책 관련 이벤트도 생각해야 손님이 눈길을 끌어요."
현재 서점을 하고 있는 후배의 충고를 들으면서 순간 잘하는 일인지 고민도 했었다.
"뭐 그냥 하고 싶어서 해보는 거예요. 많은 직업 명함 중에 책방 주인이란 말이 좋아서요. 저도 알아요. 돈 벌려면 책방하면 안 되지요. 저만 해도 인터넷으로 더 싸게, 더 편하게 책을 사보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 이익이 없어도 진짜 하고 싶은 거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요. 미래를 준비하는 목적이 아니라 삶을 내 맘에 들게 마무리하자는 목적이랄까?"
<봄날의 산책>은 시와 에세이가 주종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글쓰기 관련 책들과 스테디셀러 인문학, 그리고 지역에서 글을 써서 책을 출간한 지역작가들의 책을 비치했다. 코로나로 오히려 쉼터 역할을 하면서 책도 읽고 글도 썼던 지난 2년 동안 재밌고 유익하게 읽었던 책들을 모두 살펴보았다. 그중 100여 종의 책을 선별하여 주문하고 비치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이외에 다른 책을 비치하기 위해 지인들의 의견도 구했다. 글을 쓰는 에세이팀들이 추천하는 책도 주문하고, 유명 작가의 갓 새로 나온 책은 수량을 늘렸다. 책방을 찾은 누군가가 주인장의 추천으로 책을 사겠다고 할 때를 꿈꾸며 주문한 책들도 있다.
'3월 첫 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책방 엽니다'라고 소문을 내놓았다. 그래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약속대로 책방지기로서의 첫 출발을 할 거라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오전에는 책방으로 와서 준비하고, 오후에는 학원 수업 하고 다시 밤에 또 책방에서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평온해지는 책방 공간의 숨소리를 느끼며, 평온한 미소를 짓게 됐다.
많은 지인들이 보내주시는 염려와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매일 나는 정신을 무장했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시도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해보자.'
'지금 아니면 다시는 내 건강이 허락지 않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정신 무장을 하면서까지 책방을 차리는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가? 숨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 하나를 말하라면 '사람 속에 있는 나', '사람을 이어주는 나'로 살고 싶어서다.
나는 책방으로 다른 세상을 꿈꾼다. 책방의 주인은 나 혼자가 아니다. 매 요일, 하루 3시간씩 도와주겠다고 자처한 에세이팀과 책방을 찾는 사람은 모두가 주인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 속담도 있지만 오히려 사공이 많으면 힘을 합해 배가 더 힘 있게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정말 그랬다. 책방의 주인들은 각자의 재능으로 책방 오픈을 이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