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의 이르핀에서 공장과 상점이 불타고 있다.
AP=연합뉴스
ISC: "푸틴이 공개적으로 소련에 속했던 비러시아계 민족에 대한 당시 소련의 정치를 비판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에 대한 푸틴의 비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일마즈: "이후 소련에서 일어났던 일과도 연관돼 있다. 소련 구조 내에서 러시아 국가 정체성이 국제주의 프로그램을 가로채기 시작했고 점점 더 지배적이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소련 담론에서 러시아 국가 정체성이 점점 더 우세해지면서, 국제주의 프로그램을 가로채버렸다. 동시에, 다른 국가 정체성도 강화되었다. 그래서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소련 붕괴의 원인이 된 국가 정체성 간의 경쟁이 생겼다. 이론처럼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1990년대까지, 다른 민족 국가들이 있었고, 소련으로부터 받은 민족 담론과 정체성을 계속해서 구축해 나갔다. 현재 러시아는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들처럼 매우 러시아 민족주의적이고 국가 중심적이다.
문제는 구소련 공화국 대부분이 이런 민족주의 담론에 대항할 정치적 움직임이나 이념이 없다는 점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정치적 스펙트럼에는 민족주의가 있지만, 국제주의적인 접근도 있다. 즉, 우파를 상쇄할 세력이 있다. 옛 소련 공화국에는 그런 세력이 없었다. 볼셰비키의 유산 중에서 근대 국제주의 사회주의 운동이 파괴되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오늘날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민족주의적이다."
ISC: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같은 인접국에 대한 푸틴의 비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마즈: "외교정책이나 안보정책 측면에서, 러시아 지도부는 인접국 영토를 러시아의 완충지대로 본다. 안보상 매우 중요하다. 유라시아 한 가운데에 있는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좌우에 바다가 있는 섬이나, 외떨어진 나라가 아니라 거대한 대륙 국가이다. 그래서 인접한 영토를 완충지대로 본다."
ISC: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항할 이념이 없다고 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의 몰락 때문인가?"
일마즈: "가장 큰 이유는 소비에트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소련의 부정적인 부분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국가와 국가 기구가 여전히 모든 것을 지배한다. 좌파나 국제주의 운동의 부재는 소련 시대의 안타까운 유산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강력한 노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에트 시대에 노동조합은 관료적인 종이 호랑이가 됐다.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데, 자본주의 시대의 노조가 왜 필요한가라는 논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조의 기능은 없어졌고 우리가 아는 정당은 일당체제였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민중의 정당이었다면 왜 다른 정당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하여 강력한 전통적인 정당이 없다. 정당 지지도는 1991년부터 문제가 되었고, 노동조합은 약화되었고, 좌파 정치는 그보다도 더 힘이 없다."
ISC: "소련의 국가주의가 소련 이후 시대에 이념이나 정당이 등장하고 꽃피울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마즈: "덧붙이자면, 이런 결과로 여러가지 세부사항과 함께 우익 담론, 특히 때때로 극우 담론이 더 인기를 끌게 됐다. 이런 현상은 독일에서 볼 수 있다. 독일 민족주의는 이전 서독보다 동독이 더 강하다. 독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ISC: "과거에 푸틴은 비용 효율적인 전략가로 규정됐다. 특히 좌파 중 다수는 러시아가 장기간 전쟁에 빠져있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강한 저항을 고려해보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푸틴이 비용 효율적인 전략가가에서 변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마즈: "맞다. 나를 포함해 좌우파를 막론하고 다수의 전문가들, 특히 현실주의적 접근하는 사람들도 푸틴을 영리한 전략가로 모험을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주의깊게 비용편익 분석을 하고 위험이 낮을 때 행동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우, 비용 효율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전처럼 분리주의자를 지원하거나 2차 민스크협정 이행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했을 수도 있다. 현재 푸틴의 무모함을 보면 미국의 군사적 모험이 연상된다. 아마도 이념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조치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역사 강연에서 푸틴은 전략가라기보다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현대 우크라이나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전형적인 민족주의자가 그러하듯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 세기 전의 사건들을 이용했다.
한마디로 러시아 민족주의자인 푸틴이 전략가 푸틴을 집어삼킨 셈이다. 이것이 나의 입장이지만, 누군가는 푸틴이 더 기다리고 전략가로 활약하는 비용이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푸틴이 이렇게 분석했을지는 몰라도 그 분석 뒤에는 전략가가 아닌 민족주의자의 접근이 있다고 본다."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 국경에 더 가까워지자 긴장 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