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카레이츠
큐리어스
러시아 침공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걱정하다 문득, 그곳에 한국인들도 있을 텐데,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뿐 아니라 '고려인(카레이츠)'들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들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위기에 처했다는 걸,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안타깝다.
사진작가 김진석은 2019년부터 이들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흔적을 쫓아 그들의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의 역사를 사진집 <고려인, 카레이츠>에 담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낯설고 슬픈 얼굴이라 지레짐작한 내 무지와 편견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그들은 어디서나 만나봄직한 친근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1937년 10월 어느 날,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 민족 약 172,000명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열차에,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화물칸에 몸을 실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가 진행된 것이다. 당시 소련의 1937년 10월 25일 자 보고서에 의하면 고려인 총 36,442가구 171,781명이 이주를 마쳤다고 하면서, 이주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20,170가구 95,256명, 우즈베키스탄공화국으로 16,272가구 76,525명이 총 124편의 열차에 배치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강제 이주로 산산이 흩어진 '고려인'들을 찾아 나선 김진석은 프롤로그에서 '고려인'의 연원을 이렇게 전달하며 사진집을 열고 있다. 그는 11개국, 30여 개 도시에서 약 4천여 명의 '고려인'을 만나 사진기에 담았다.
그가 찾은 곳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동유럽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와 사할린까지다. 지도를 펼치고 그가 찾은 곳을 더듬다 보니, 그 먼 거리에 아득해졌다. 이 아득히 먼 곳에 한민족의 뿌리를 가진 이들이 숨 쉬고 살아가며 삶을 꾸려왔다는 경이로운 사실에 절로 수굿해진다.
어디에서고 삶은 이어지고 있다
지금 포화가 끊이지 않는 전쟁 한복판의 우크라이나에, 이전에는 '고려인'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 2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그들의 조상은 아마도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유배된 척박한 땅을 떠나 비옥한 대지를 품고 있는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을 것이다.
낯설고 물 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큰 고난을 감내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헌에서 만났던 앞선 '고려인'들이 말풍선을 달고 떠올랐다. 그중 먼저 떠오른 이는 주세죽이었다.
주세죽은 이념적인 이유로 이름과 공헌이 알려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그가 호명되는 방식은 박헌영의 아내로서다. 하지만 그를 박헌영의 아내로만 기억하는 것은 부당하다. 박헌영을 만나기 전 그는 이미 우뚝했던 독립운동가였고 여성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결혼 후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검거로 수감되며 고초를 겪은 후 둘은 소련으로 탈출한다. 탈출 후 낯선 땅에서 딸을 출산하고 양육하면서도 독립운동과 세계 해방에 헌신했다. 하지만 시대의 격변 앞에 개인의 운명은 유리처럼 부서졌다.
그를 격동의 쓰나미가 휩쓸어 밀어낸 곳이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였다. 소련으로부터 일본의 첩자라는 의심을 받은 그는 그곳에서 혹독한 유형생활을 견뎌야 했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 중 일부는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낸 불운한 삶을 실감나게 복원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로 명성이 드높았던 홍범도 역시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엄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민족의 영웅이었던 그가 추방된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수위로 생을 마감한 비통한 역사는 수많은 고려인들이 겪었을 간난신고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카자흐스탄엔 전체 인구의 0.6퍼센트인 약 8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경제력이 카자흐스탄 경제력의 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폭압적 일제시대를 거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일어선 한민족의 정신이 그들에게서도 발현된 것이리라.
그렇다고 모든 이주지에서 모든 '고려인'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소수민족인 이주민이 차별과 냉대 혹은 혐오를 뚫고 굳건한 삶을 세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한국인이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 태도와 이를 받아내고 삶을 일구어야 하는 이주민을 생각해 보라).
종종 소수의 행운이 과하게 대표 되는 착시현상은 다수의 고난과 역경을 지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모든 '고려인'이 성공했다고도 불행했다고도 단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낸 각각의 '고려인'을 한 인간으로 복원하고 이해하는 일은 뜻깊다. 그들 모두 유의미한 인류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