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간에 포함된 [그림] 행복의 맥락과 패턴
권지성
저를 포함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진은 동시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연령집단으로서 45년생, 58년생, 71년생, 84년생, 97년생 남녀 각 6명씩, 총 60여명을 선정하고, 집단면접을 통해 행복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행복이 이전 연구들의 범위보다 더 넓고 더 복잡하며, 그 안에 더욱 다양한 차원들이 포함되어 있고, 행복의 조건이나 영향요인들로 범위를 넓히면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그림 안에 있는 조각들은 기존 연구들 중 어느 곳에선가 한 번쯤은 언급된 것이지만, 이렇게 한데 모여서 정리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림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행복은 다차원 '복합구성체'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서로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귀하는 현재 어느 정도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흔한 생각으로서 행복을 점수로 매기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어떤 사람은 0점부터 10점, 어떤 사람은 0점부터 100점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며, 어떤 사람은 1점을 바닥으로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차원에서 중요한 점은 마음속에 '밑바닥'과 '만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어떤 사람은 밑바닥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만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태를 판단합니다. 전자는 자신의 '충분함'을, 후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리는 듯합니다.
둘째, 첫 번째 생각만큼 흔한 것으로서, 행복을 조건들의 결합으로 보는 것입니다. 행복의 테트리스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조건들이 채워졌기 때문에' 또는 '이 조건은 채워졌고, 저 조건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점수를 부여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조건들이 얼마나 충족되었는가, 만족하였는가를 기준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행복 자체가 아니라 행복의 조건들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 유형이 사람들이 어떤 조건이 채워졌을 때 느낀 좋은 기분과 그렇지 않았을 때 느낀 나쁜 기분을 그 조건과 동일시한 결과라고 이해했습니다.
셋째, 행복과 불행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불행을 0이 아닌 마이너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불행한 상태는 0이 아니라 –10점이라는 것입니다. 이 유형에 속한 다른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연속선 위에 있지 않으며,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따라서 불행하지 않은 것은 0점, 행복하지 않은 것도 0점이며, 그 상태에서 행복 점수는 행복에 해당하는 것들의 점수가 올라갈 때 높아지고, 불행 점수는 불행한 일들이 사라질 때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행복을 시공간의 총량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시공간의 범위를 정한 뒤에 그 안에서 행복하게 보낸 시공간의 총량을 계산하고, 그 시공간을 누구와 뭘 하면서 보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일주일, 168시간 중에서 40시간 정도를 직장에서 보내고, 10시간 정도를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데 사용하며, 118시간을 집과 근처 지역사회에서 보냅니다. 118시간 안에는 집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하고, 씻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잠을 자는 시간과 밖에 나가서 운동하고 산책하고 장을 보고 여가를 보내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 중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시공간의 비율이 높을수록, 즉 총량이 클수록, 우리는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행복의 차원이 마음에 듭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하나둘씩 더 행복한 만남과 활동으로 채워나가고, 나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복잡한 요소들이 남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것을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행복의 조건들에 의미를 부여한 것들과 행복의 하위요소라고 할 수 있는 긍정 요소들과 부정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행복의 요소들은 행복보다 작거나 낮은 수준의 것들이지만 행복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개념들입니다. 긍정 요소에는 쾌락, 즐거움, 평안, 만족, 충족, 소확행, 자유, 평등 등이 포함되며, 부정 요소에는 고통, 슬픔, 걱정, 불만, 불안, 상실, 좌절, 불쾌, 우울, 디스트레스 등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즐겁거나 평안하거나 만족스럽거나 소확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행복하다'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행복을 좁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불행하다' 또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 대신에 고통스럽거나 불만족스럽거나 불안하거나 좌절하거나 불쾌하거나 디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의미'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여기에는 성취, 활력, 좋아하는 일, 살아있음, 사랑, 안정/여유, 화목/어울림, 재미, 경험, 보람, 품위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마음의 조각들은 행복의 조건과 행복감을 연결하고 중재해 줍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에게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제가 이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활력과 살아있음을 느끼고, 학생들을 사랑하며, 재미를 느끼고, 경험을 쌓아간다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런 의미들을 부여한다면, 저는 앞서 살펴본 행복의 긍정 요소, 즉 즐거움과 만족과 충족과 소확행과 자유와 평등을 느끼며 행복을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는 반대로 강의를 귀찮게 여긴다면 불만스럽고 불안하고 불쾌하며 우울해지고, 결국 불행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와! 그냥 간단한 질문에 답하려고 했을 뿐인데,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복잡하죠? 그런데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대처하는 전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살던 대로 살아가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특별한 감동도 즐거움도 없이 무덤덤하게 지낼 수 있거든요. 이 연구를 한 뒤로 저에게 던지는 권고사항입니다.
그리고 제 또래의 X세대 중년 남성들과 여성들, 그리고 다른 세대의 시민들에게도 제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45년생, 58년생, 71년생, 84년생, 97년생 남성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저와 만나 대화를 나눈 그 시간과 그 이전에 면접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답했습니다. 어떤 이는 행복해지려고 하면 더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좋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행복이 어떤 행복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제가 이 기사에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각자의 행복을 정의하고,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활동을 할 때 행복한지 검토해 본 뒤에, 더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공간과 관계들을 조금씩 더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행복의 의미와 요소들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더 복잡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공유하기
"지금 행복하십니까?"에 대한 답, 단순해선 안 된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