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초등학생 6학년 학생이 다음과 같이 대답해 명언제조기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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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초등학생이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를 설명한 것이 지금까지 레전드 편으로 회자된다. 6학년 학생 왈,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예능이기에 웃음 코드로 넘길 수 있지만 SNS에서 많은 이들이 이 말에 환호하고 맞장구친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과 동의가 실려 있다고 본다. 잔소리와 조언(충고), 뭐라고 딱 잘라서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는 상대가 잘 되라고 해주는 말일 텐데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확 달라지니, 아무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닌 것 같다.
부모님의 애정 어린 잔소리도 이해는 해도 듣기 싫은 것이 사실인데, 애정이라는 전제가 기본값이 아닌 회사에서 조언 또는 충고를 받는다면 과연 그게 효과적일까? 우리 조직은 어떻게 피드백을 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실패로 끝난 첫 동료평가
비즈니스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많은 회사들이 다양한 인사제도를 도입하고 조직에 맞춰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연결해 조직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되면서 동료평가, 360도 평가, 수시평가 등이 도구로 활용된다. 다시 말해, 다방향으로, 서로에게, 자주 피드백을 주는 추세로 평가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조언조차도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점, 그래서 조언을 해 줄 때도 쉽게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조직 문화에 대한 점검 없이 수시 피드백을 도입하는 건 시간 낭비 또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평가제도와 피드백 자체는 다르다. 피드백은 꼭 평가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자주 일어날 수 있고, (대개 고과) 평가는 회사에서 연 1회, 반기별, 분기별 등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5점 만점에 5점, ABC 중 A등급이 업무를 잘한다는 피드백이 되는 것처럼 평가 점수 또는 평가 코멘트 자체가 구성원에게는 피드백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가제도는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잘못된 방향성을 전달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 회사도 이런저런 인사제도를 시험해 보고 있다. 그중 새로운 평가제도로 동료평가와 다면평가를 경험했다. 동료평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해외 선진기업뿐 아니라 카카오, 네이버 등의 국내 유명 기업들에서도 사용한다는 평가 제도인데, 시류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도 동료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 느낌은 이러했다. 대학교 팀 프로젝트 시간에 무임승차자를 방지할 목적으로 교수님께 제출했던 평가표. 누가 볼까 봐 종이를 손으로 가리고 평가했던 그때처럼, 팀원들이 보지 못하게 모니터 화면을 어둡게 한 채, 점수를 주고 장단점 문항에 피드백을 적었다. 이제까지 팀장님을 제외한 동료들을 평가자로 인식했던 적이 없기에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다.
한 달 후, 동료평가의 결과라고 평가지가 메일로 날아왔다. 익명의 평가자들이 내게 준 점수(5점 만점)와 피드백들이 정리되어 보였다. 대개는 4~5점을 주었는데, 문제는 1점을 준 사람이었다. '누가 나에게 1점을 준 것이지? 도대체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해 봤다고?' 평점 테러의 범인을 추측하다 포기하고 팀원들이 준 서술형 피드백으로 넘어갔다.
"우리 더 친하게 지내요", "파이팅!" 할 말이 없어서 적은 듯한 코멘트에 헛웃음이 나왔다. 2주가 지난 시점, 친한 팀원과 점심을 먹다가 누군가가 팀원 모두에게 1점을 줬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우리의 첫 동료평가는 실패했다.
물론 팀의 분위기와 팀원들의 성향에 따라 동료평가에 대한 만족도는 달랐다. 일리는 있지만 날카로운 피드백에 상처를 받아 의기소침해졌다는 사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피드백에 어이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상처받았지만 그럼에도 도움이 된다, 어떤 점을 더 노력해야 할지 알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팀과 팀원에 따라 각기 다른 만족도를 낳았지만, 의견을 취합해보면 동료평가의 핵심은 '팀원 간 업무 공유가 잘 이루어지는지'와 '피드백에 대한 심적 부담이 적은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이 되는 피드백은 환영합니다
최근 잡코리아가 남녀 취업준비생 1522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사수 유형"을 설문했다. 96.2%가 사수가 필요하다고 답했는데, 문서 활용법을 알려주는 선배, 직장 예절을 알려주는 선배가 1, 2위를 차지했다. 달리 말하면 많은 2030 구직자들은 피드백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드백해주는 것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평가가 아닌 알려주는 방식, 비법 전수 방식이길 원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잔소리가 싫긴 싫지만 이해할 수 있고 나중에는 그립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내가 잘 되길 바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애정, 그것이 바로 조직에서 필요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아닐까 싶다.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다면 피드백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