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만난 윤석열 당선인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자택을 예방해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선인대변인실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사저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대구 달성에 마련한 사저로 내려오면서 '못 다 이룬 꿈'을 이야기했고, 8일 유영하 변호사를 지지하는 영상을 통해서도 '못 다 이룬 꿈'을 이야기했다.
대관절 그의 못 다 이룬 꿈이 무엇인지, 대구에서 36년을 살며, 10년째 기자 생활을 하는 나는 궁금하지 않지만, 대구 밖 사람들은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의 못 다 이룬 꿈이 대구에선 이뤄질 거라는 강한 믿음도 엿보인다. '대구 밖 사람들'에게 대구는 '그 정도의 도시'로 인식되기 때문에.
'못 다 이룬 꿈' 말할 기회
우선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말할 수 있는 기회는 누가 제공했나. 촛불 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건강상의 이유와 사회 통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박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깬 사면인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적 사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공연히 박 전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유영하 변호사와 친분을 강조했다. 송 대표는 대선 기간 대구에 와서 "박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때 구속된 게 아니"라고 강조하는 데 급급했다.
왜, 대구에선 박 전 대통령의 대구행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다. 이런 판국에 누가 누굴 비판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이 결정되자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냈다. 정의당과 진보당, 시민단체에서만 '촛불 시민을 기만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기간 중 박 전 대통령의 대구행이 결정되자, 이재명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구경북미래발전위원회는 달성 사저 앞에서 환영 기자회견까지 했다. 다시 상기한다. 누가 박 전 대통령에게 '못 다 이룬 꿈'을 꿀 기회를 제공했나.
곧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지만 대구에선 '박심'과 '윤심'을 내세운 후보들이 각광 받을 뿐이다. '민심'에 기대 대구시민을 설득해야 할 정치 세력은 시장 후보조차 변변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일 마감된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 공모에 서울은 6명이나 몰렸지만 대구는 1명에 그쳤다. 경북은 없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데 누가 나가려고 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어진다. 박 전 대통령의 '못 다 이룬 꿈'이 이뤄지는 데 일조하는 건 누구인가? 다른 선택지는 만들어주지도 않은 채 다른 선택을 하라는 요구만큼 난감한 것도 없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았다. 지난 촛불 대선과 비교할 때, 이재명 후보는 전국 광역시도 대부분에서 문 대통령보다 더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단 2곳, 대구와 부산에서만 촛불 대선보다 득표율이 떨어졌다. 촛불 대선이 다자 구도였고 이번 대선은 사실상의 양자구도로 진행됐는데도 하락했다. 민주당 대구시당 지도부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도 "득표수는 더 늘었다"고 말한다. 냉정한 평가는 뒤로 하고 험지에서 고생한다는 온정주의만 가득하다.
민주당 대구시당의 일부 권리당원이 이대로는 지방선거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며 중앙당에 조치를 요구했지만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는데, 시민들이 먼저 변할까?
민주당은 우선 시민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노력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 기왕이면 그 선택지가 좋은 선택지면 더 금상첨화다. 국민의힘이 대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내놓는 공직 후보자의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전·현직 국회의원이거나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들이 후보로 나선다. 민주당은? 당사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시민 입장에선 경력에서부터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더 의미있고 소구력 있는 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안동 출신이라며 대구와 경북에 올 때면 '경북의 노래'를 불렀다. 선거 때만 되면 내려오는 '대구 출신' 국회의원들도 있다. 이재정, 조응천, 추미애 같은 이들이 선거철만 되면 '대구의 딸'이니 '대구의 아들'이니 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그렇게 따지면 국민의힘은 대구의 딸·아들이 최소 12명인 정당이다. 시민들이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지역에 더 당원이 많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지역 국회의원에게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지역 정당'이 지역민에겐 더 이익 아닌가?
이미 대구는 조금씩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