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3일과 14일 이틀간 경남 창녕스포츠파크에서 벌어진 유나파이드컵에 참가한 장애인 선수들. 두별씨도 이대회에 참가해 기량을 뽐냈다.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두별씨.
아이-뷰
특별했던 첫 만남
"두별이를 처음 만났던 날 동인천에 있는 중구 복지관에서 요리를 하고, 시간이 남아서 부평공원을 갔어요. 그날 공원에서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끝나고 난 후에 보니 쓰레기들이 바닥에 많이 굴러다니더라고요. 그 광경을 본 두별이가 갑자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어요. 말릴 겨를이 없어서 저도 같이 주웠는데, 그날 주운 쓰레기가 100리터들이 쓰레기 봉지로 하나 가득했어요. 한 시간은 족히 주었던 것 같아요."
당시 두별씨는 길거리에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모두 주웠다. 이유를 물어보면 지저분해서라고 단순명료히 대답했다. 깔끔하고 정확한 걸 좋아하는 두별씨에게 지저분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일을 멈추기까지는 두별씨 어머니의 지속적인 설득이 필요했고, 그 후로는 길거리에서 쓰레기 줍는 일은 없어졌다.
작은 쌍화탕 병을 깨는 바람에 당시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두별씨 다리에 유리 파편이 튀어서 피가 났던 일, 거의 모든 일에 자주 화를 내거나 복지관에서 좋아하는 반찬을 더 주지 않는다고 바닥에 식판을 내팽개쳤던 일, 합창단에서도 악보를 집어 던지고 싸웠던 일 등 그와 함께한 일 년 정도는 매우 힘들었지만, 2~3년 정도 지나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적응도 되고 무엇보다 두별씨가 많이 좋아지면서 괜찮아졌다.
"언젠가는 복지관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두별이를 마음에 들어 했어요. 그런데 두별이는 그 여자아이의 관심이 싫었나 봐요. 그런데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별이에게 표현하니까, 어느 날 건너편 쪽에 앉아 있는 그 여자아이를 보더니 다가가서는 그 아이의 등을 아주 세게 때렸던 일이 있었어요. 덩치 큰 두별이가 때렸으니 얼마나 무섭고 아팠겠어요."
그래서 두별이만 보면 그 여자아이는 도망을 다니기에 바빴다. 그런데 5년 만에 같은 프로그램을 하게 돼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화도 내지 않고 그 여자아이가 있어도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5년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두별이를 많이 성장시킨 것 같다.
2014년 인천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해, 이병남씨는 부평 자원봉사센터의 두 걸음 봉사단 소속으로 전국에서 출전한 테니스 장애인 선수들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이때 이병남씨는 전라북도 선수를 맡았는데, 그 선수가 동메달을 따면서 일주일 내내 봉사를 했다. 이 봉사를 하던 중에 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올림픽이 끝난 후에 바로 활동지원사의 일을 시작했다.
"활동지원사를 시작할 때,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두별이를 만나지 며칠 안 돼서 작은아이 학교에 참관수업을 가게 됐는데, 그때 두별이랑 같이 갔어요. 두별이를 처음 본 작은 아들이 바로 형이라 부르더라고요."
작은아들 졸업식 끝나고 이병남씨 가족이 식사를 할 때도 두별씨와 함께했다. 그런 일들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병남씨네 가족과도 가까워졌다.
"작은 아이가 두별이를 좋아해서 잘 따랐어요. 같이 농구도 하고 그러니까 두별이도 둘째 아이를 좋아하더라고요." 이병남씨 가족은 일 년에 몇 번씩 가족 등반을 할 때도 두별씨는 함께다닌다.
"작은 아이가 작년에 농구를 하다가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게 됐어요. 그 모습을 본 두별이가 깜짝 놀라서면서 '너 왜 그렇게 다쳤어?'라고 하는 거예요."
작은 아이를 걱정하는 두별씨의 모습을 본 이병남 활동지원사는 너무 많이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다. 웬만해선 문장 구사를 하지 않던 두별씨의 긴 문장 구사에 놀라고, 작은아이를 걱정하는 두별씨의 진정성에 또 놀랐다. 이처럼 소소한 크고 작은 경험들이 이병남 활동지원사와 두별씨 사이에 쌓여 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정이 돈독해져 갔다.
정말 바쁜 두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