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고나 대성당성당의 정원 풍경
임명옥
복도 쪽 회랑을 지나면 정원이 나온다. 성당의 정원에는 주황빛 오렌지가 열려 있고 작은 연못이 있고 잘 가꿔진 나무와 푸른 잔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원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모습과 회랑의 아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멋이 있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오랜 역사를 품고서 이 고장 사람들의 생사고락을 함께했을 타라고나 대성당의 시간들은 돌 하나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배어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관광객이 없어 한가로운 작은 예배실에 앉아 둥근 돔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올려다 보았다. 거대하지 않아서 친근하고 조용하고 한가로워서 은혜로운, 복도를 장식하는 천장교차궁륭(X자 형태 아치모양)의 아름다움은 신에 대한 인간의 정성 어린 마음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나눴다.
성당을 나와 스페인의 점심인 메뉴 델 디아를 맛있게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구시가지에는 로마시대 성벽이 남아있고 중세시대에 지은 건물들도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타라고나는 고대 로마시대의 모습과 중세의 골목들,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까지 역사와 휴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의 번잡함과 세련됨도 좋지만 타라고나의 한가로움과 고풍스러움도 매력적이었다.
오후 5시 반,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타고 이제 숙소에 가서 쉬자고 생각하면서 피곤해진 눈을 감고 타라고나 여행을 반추하고 있는데 얼마쯤 가다가 기차가 플랫폼에서 멈췄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방송이 나온다. 사람들은 술렁대고 기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알아보는 사람들, 그리고 돌아와서 가방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스페인 사람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가 기차 밖에 나가서 알아보더니 여행객인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고가 났는데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수습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기차가 언제 출발할 지 모른다는 말을 전해 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기차에서 기다려야 한단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놀라워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버스터미널은 더더군다나 모르니 기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출발하겠지, 느긋하게 기다리자,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우리가 여행하는 사이 누군가 기차 철로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우리는 기차를 통해서 삶의 추억을 쌓으려 하고 누군가는 기차를 통해서 삶이라는 끈을 놓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한 영혼을 생각했다.
기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근처에 앉아 있는 스페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에콰도르에서 스페인으로 이민 와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자식을 키우고 먹고사느라 힘들었던 세월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60대로 보이는 마리, 마리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동시통역해 주며 여행객인 우리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는 서글서글한 중년의 다비드. 그들은 처음 보는 여행객인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생이 마감된 곳에서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소통하고 나눌 수 있었다.
19년째 런던에서 이민 생활을 하며 아버지 장례식과 누나 장례식에도 못 와 본 남동생, 13년째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며 가장으로서 짐을 지느라 유럽에 처음 와 본 또 다른 남동생, 작년 코로나 시대에 혈액암으로 여동생을 떠나보내고 장례식에 못 왔던 남동생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처음 스페인에 와 본 두 살 터울 여동생과 나, 남은 4남매는 슬픔과 고통과 아픈 시간들을 함께 나누면서 우애를 다지게 되었다.
그래선지 마리 얼굴에서 보여지는 삶의 무게에 더 깊은 연민을 느꼈고 다비드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받았다. 나는 또 마리의 이민생활과 남동생들의 이민생활이 겹쳐 보이면서 마음이 찡해졌다. 정직한 마리의 눈물 맺히는 이민사를 듣고 다비드와 남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이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고 마침내 종착지인 바르셀로나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코로나 시대에 동생들과 스페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타라고나는 지중해 햇살이 반짝이는 이천 년의 세월을 지니고 있는 여행지로 추억될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곳 그래서 겸손한 삶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와 사는 곳,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배려하며 연민을 함께 나눈 인간미가 살아있는 곳으로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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