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표지
위즈덤하우스
함박눈이 세차게 내리는 밤,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쓰러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몸짓이라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축 쳐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아기 고양이는 기다려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쓸쓸하고 적막했던 회색 눈의 세계를 노란색의 판타지 세상으로 전환한다. 노랑 호롱불을 둔 곰 아저씨의 등장과 함께.
아기 고양이는 곰 아저씨에 품에 안겨 꿈같은 길을 떠난다.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울퉁불퉁 들길을 달리고, 사나운 강을 건너고 으스스한 숲을 지날 때도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 곁을 든든하게 지킨다. 곰 아저씨 덕분에 아기 고양이는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고 이루고 싶은 꿈을 마음껏 펼친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 싶은 엄마를 만난다.
엄마 고양이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기 고양이. 하지만 곰 아저씨가 종을 울리면 새들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아기 고양이는 엄마와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곰 아저씨와 함께 다시 먼 길을 떠난다.
작은 생명들의 행복을 바라는 따뜻한 판타지
아기 고양이를 끝까지 배웅하던 곰 아저씨가 쓴 모자가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인 꼭두가 쓴 모자를 빼닮았다. 그러니까 곰의 존재가 꼭두였던 것. 꼭두는 전통 장례식에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불귀의 객'이 된 아기 고양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처음 길에 쓰러져 있을 때만 해도 아무 옷도 걸치지 않았던 아기 고양이는 어느새 엄마가 준비해 준 솜바지와 포근한 목도리가 있어 더는 추워 보이지 않는다.
원혜영 작가는 길 위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쓸쓸하게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전작 <딱 하루만 고양이>로 살면서 한 번쯤은 고양이로 세상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쾌하게 표현했던 원혜영 작가를 떠올려보면, 어떤 마음으로 아기 고양이가 가는 길을 그렸을지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