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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교환, 쓰레기 버리기, 주차권 배포... 은행경비원의 지금

10년 전 저는 원청 담당자였습니다... 10년 뒤에도 나아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등록 2022.05.09 12:12수정 2022.05.0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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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8년부터 2013년 사이 원청업체(사용자)인 OO은행 안전관리부 경비원도급 담당과장이었다. 영업점 경비원의 배치 및 교체, 민원 처리를 비롯해 은행 본점의 비용관리팀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용역비를 하청업체(경비회사)에 지급하는 일도 했다.  

내가 근무할 당시 당시 OO은행 경영진은 사모펀드 지배 아래 있었다. 경영진은 은행직원들에게 법규준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영업점장을 비롯한 은행직원들은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경비원이 잡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교체를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 그 사이에 경비노동자들은 출입자 통제, 객장 내 질서유지, 화재 및 범죄예방, 안내 업무를 벗어난 업무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저임금과 고객응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사례1. 경비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깨닫다  
 
 착취.
착취.pixabay
 
지점장 : "과장님! 나 □□□지점 지점장인데요. 경비원 교체를 요청하려고 전화했어요."
필자 : "안녕하십니까? 지점장님! □□□지점 경비원이 경비업무에 소홀한가요? 경비회사 현장대리인과 경비지도사를 통해 개선을 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지점장 : "아니오. 다른 지점 경비원은 신용카드 유치도 잘해오는데 우리 지점 경비원은 너무 영업력이 없어서요."
필자 :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카드 유치는 경비원의 업무가 아닌데요."
지점장 : "안전관리부장 바꿔요! 말이 안 통하네."  


위 같은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ATM 현금 보충, 동전 교환, 자동차 세차 및 정비, 운전, 은행원 및 VIP 고객의 사적 심부름, 화분 관리, 청소, 커피 심부름, 은행원 사무보조, 금융상품 안내 등 잡무 요구는 끝이 없었다. 그렇다고 급여가 높거나 수고비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었다. 은행원과 고객 그리고 동료 노동자인 청소원 마저도 경비원을 하인을 부리 듯 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례2. 안전보안점검 방문시 경비원의 부재를 발견하다  

필자 : "차장님! 경비원 주임님은 어디 계세요?"
차장 : "예, 제가 심부름 보냈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바빠서요."
필자 : "그러다가 현금피탈사고나 화재라도 발생하면 어쩌시려구요.새마을금고 사건도 있었잖아요"
차장 : "설마 그러겠어요? 여기는 도심인데."  



필자는 당시 은행원들의 안일한 인식에 크게 놀랐다. 소탐대실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경우 사고발생시 경비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경비원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심부름을 거절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은 잡무 거절을 하면 사실상 따돌림을 당하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례3. 은행CS부서의 부당한 요구를 비판하다  


차장 : "김 과장님! CS(소비자만족)부의 ■■■ 차장입니다. 오늘 저희 부서와 안전관리부,경비회사 관계자 회의에서 과장님이 경비업체 편을 들어서 정말 난감했습니다. 경비업체 협조 하에 영업점장이 경비원을 강하게 통제하여 CS 수준을 높이는 것이 잘못입니까?"

필자 : "차장님! 그렇지 않습니다.저도 은행원입니다. 제가 이유없이 경비업체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경비원은 도급사 은행 소속이 아닙니다. 수급사 직원인 경비원에게 직접 지시를 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고객만족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면 경비회사를 통해 교육을 강화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대전제에 찬성합니다. 그러나 CS수준은 본래 은행원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CS평가에 경비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법률리스크에 노출됩니다. 셋째, 원청사도 경비원의 처우 개선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 전제 없이 저임금, 은행원의 잡무 요구, 고객 응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비원에게 사람 대접도 해주지 않으면서 CS수준을 높이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례4. 은행원들의 불만을 접하다

"김 과장! 자네가 경비원이야?"

부서 상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자 : "아닙니다. 은행의 급여를 받고 은행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맞습니다.다만 보편적인 정의와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상사 : "자네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은행원이야. 영업점에서 난리야. 경비원 담당과장이 이상하다고 말이야. 왜 김 과장이 경비원의 고용이나 인권에 신경을 써? 이해할 수 없네. 자네 영업점으로 가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사례5. 10년 뒤... 달라지지 않은 경비노동자의 현실

필자는 몇 년 전 은행을 퇴직하고 보험설계사, 고객센터 상담원, 도보 배달원을 거쳐 '로비매니저 대직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대직자'란 은행 영업점 일반경비원의 휴무시 그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대직자의 업무와 은행경비원의 업무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만 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원들이 출입자 통제, 범죄·화재 예방, 안내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동전 교환, 일반쓰레기 버리기, 주차권 배포, 스마트폰 앱 설치 등을 수행했다. 대직자 근무를 끝내고 관심을 가지고 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를 알게 됐다.

2020년부터 은행경비연대노조준비위를 이끌어 온 이태훈 위원장(현 은행경비원협회)이 은행경비원 처우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아래는 은행경비원들의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서 거의 매일 언급되는 내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언론보도도 꾸준히 있었다.

- 절규하는 은행경비원, 외면하는 은행권 노조 (2020.02.03. 청년일보)  
- 은행경비원,경비외 업무 여전,제2의 새마을금고 사태 우려 (2020.11.27. 라이센스뉴스)  
- 나는 30대 비정규직 은행경비원, 3년2개월 뒤 해고됐습니다 (2021.01.25. 서울신문) 
- 월188만원 은행경비원의 편지, 중간착취없이 일하고 싶어요 (2021.01.29. 한국일보)  
- 은행 점포 폐쇄 가속화, 일자리 잃는 경비원들(2022.05.06. 라이센스뉴스)  


마무리
pixabay
 
답은 명확하게 있다. 파견법을 폐지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타깝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해 경비노동자를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를 취재한 <한국일보> 기자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은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국회와 고용노동부에 네 가지 제안을 했다고 알렸다.

1. 원청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주자 (근로기준법 개정안)
2. 파견수수료를 정해진 비율 만큼만 떼자 (파견법 개정안)
3. 원청도 사용자다 (노조법 개정안)
4. 간접고용노동자 보호법 제정 (별도 법 제정)  


현재 최선이라는 위의 제안도 '검토해 보겠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간접고용노동자와 시민사회는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건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외치고 싶다.  

"파견법 철폐하고 직접고용 쟁취하자!"
#은행경비원 #로비매니저 #은행경비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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