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셋째 언니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배움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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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나의 아버지가 입 밖으로 드러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뻔한 가정 형편에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언니들은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 선택이 셋째 언니에게는 나이도 주민등록증도 요구하지 않는 미싱 일이었던 것이다.
셋째 언니는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가끔씩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에 관한 얘기와 황폐했던 삶에 대해서도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공부를 하며 지난 상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조금씩 꺼내어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여전히 바쁘고 힘들게 일하지만 이제는 일이 즐겁다고 셋째 언니는 말했다. 공부를 하며 남들의 시선에 위축되고 눌려 있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거칠게 살아온 삶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공부를 하며 말투와 행동이 바뀌는 변화도 새롭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변화에 대해 들으면, 배움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정제된 말과 안정된 행동, 편안한 표정을 지인들이 먼저 알아채고 얘기한다고 했다.
셋째 언니의 이런 변화가 내게는 무척 반갑고 감사하다. 막내라는 이유로 여자 형제들의 고달픈 삶에서 비껴갈 수 있었던 나로서는 공부에 대한 언니의 열정과 그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통해서 마음속 깊숙이 쌓여 있던 얼마간의 부채를 덜어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것조차 아름답다고 느꼈다.
같이 공부하는 동년배가 많다고 했다. 그들끼리는 서로를 독려하며 끝까지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했다. 이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졸업 후에 받게 될 자격증 때문도 아니고 학사 학위 그것이 목표도 아니며 단지 공부가 공부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4교시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 30명의 아이들 중 12명이 쓰러져 있었다. 이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도 한참 더 위의 세대인 1970년대 미싱공의 학구열을 어떻게 이해할까? 본인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금의 자리와 공부의 가치를 나중에라도 알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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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타는 여자들' 속 여자들, 내 언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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