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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타는 여자들' 속 여자들, 내 언니들이었다

[내가 몰랐던 언니의 세계] 예순 넘어 대학 공부 시작한 언니들 이야기

등록 2022.05.12 06:00수정 2022.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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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기획 '내가 몰랐던 OOO 세계'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나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시절에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이 있었다. 주택의 소유 여부와 TV나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은 있는지, 신문은 구독하는지까지, 다시 생각해도 이런 조사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설문을 가능케 한 시대가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형제 관계를 적는 칸도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7남매였다. 부모님까지 9명의 대가족을 적기가 민망해서 어린 마음에 한둘은 빼고 적었는데 마치 가족을 지워버린 것 같아 죄책감도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과 친해지면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도 7남매는 놀라워했고 나는 의연한 척 웃음으로 무마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대학에 간 언니들

시간이 흘러 나의 형제들은 60대 70대의 노년의 삶을 지나고 있다. 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난 형제도 있고, 아들, 딸을 출가시키거나 손주들이 하나둘씩 있는 형제도 있다. 아직은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고 은퇴 후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형제도 있다.

형제가 많은 집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우리 집이 딱 그랬다. 형제 많은 대부분의 집안이 그러했겠지만, 장남을 위해 여자 형제들의 희생은 미덕이고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장남도 나름의 짐이 무거웠겠지만, 언니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일찍부터 직장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남편을 만났고, 막내인 내가 아직 철들기도 전에 모두 결혼을 했다. 나는 그런 언니들 덕택에 대학도 다니고 졸업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언니들끼리는 생활의 어려움과 고단함,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속상했던 시간과 맺힌 한을 토로할 기회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나는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들을 기회가 있었겠지만 언니들의 대화 내용은 철없던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언니들의 대화에도 끼게 되고 살아온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얘기할 무렵인 10년 전쯤, 육십이 넘은 큰언니가 대학공부를 하고 있다며 형제들 모인 자리에서 얘기했다.


아이들도 결혼시켰고 손주도 보며 편하게 쉬는 시기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대학 진학이라니. 모두가 놀랐던 것 같다. 언니는 백팩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무려 두 개의 학과를 번갈아 졸업했다. 지금은 그때 만난 학우들과의 모임을 이어가며 열정적인 노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후, 큰 언니의 공부에 용기를 얻었는지 셋째 언니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현재 셋째 언니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배움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 발견한 셋째 언니
 
 '미싱 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미싱 타는 여자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셋째 언니의 한 친구는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걸 치매 예방이라고 말하며 때늦은 공부지만 공부를 하는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젊은 시절을 보내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 다른 친구도 아이들 다 키우고 육십이 되니 뒤늦게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한이 되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매 예방이든 공부에 한이 맺혀서든 셋째 언니는 공부를 하며 나이 든 사람들도 몸과 마음을 젊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았고 모르던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도 이유 없이 부끄럽지 않아도 되고, 주눅 들지 않을 만한 '당당함'이 생겼다고 말했다.

셋째 언니는 미싱공이었다. 지금도 미싱 일을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해온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는지 어디에도 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싫든 좋든 그 일을 하며 언니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 일 덕에 이제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했다. 또 삶을 유지하게 해 준 고마운 일이었기에 더는 미싱 일이 부끄럽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을 봤다. 영화의 주역들은 내 언니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는 서울 평화시장에서 몇 번 미싱사, 또는 몇 번 시다로만 불렸던 이름 없는 10대 여공들, 영화는 그들이 한 노동운동의 현장을 얘기한다. 여자라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 대신 미싱을 탈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편견 속에 감춰진 그 시절 나의 언니들의 청춘의 때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는 환하고 밝은 웃음 뒤에 감춰진 노동의 힘겨움, 터무니없는 일들이 넘치던 시대의 노동과 미싱공의 역사를 담담히 말한다. 영화의 주역들은 배우고 싶다는 학구열로 하나 되는 힘겨운 연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느끼는 우애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니스커트에 긴 생머리로 밝게 웃는 셋째 언니의 오래된 사진 속 모습이 그들의 젊은 시절을 담은 흑백사진과 겹쳐 보여 울컥했다.

공부 자체가 즐거운 언니와 요즘 아이들
 
 현재 셋째 언니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배움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현재 셋째 언니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배움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envato elements
 
여자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나의 아버지가 입 밖으로 드러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뻔한 가정 형편에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언니들은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 선택이 셋째 언니에게는 나이도 주민등록증도 요구하지 않는 미싱 일이었던 것이다.

셋째 언니는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가끔씩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에 관한 얘기와 황폐했던 삶에 대해서도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공부를 하며 지난 상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조금씩 꺼내어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여전히 바쁘고 힘들게 일하지만 이제는 일이 즐겁다고 셋째 언니는 말했다. 공부를 하며 남들의 시선에 위축되고 눌려 있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거칠게 살아온 삶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공부를 하며 말투와 행동이 바뀌는 변화도 새롭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변화에 대해 들으면, 배움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정제된 말과 안정된 행동, 편안한 표정을 지인들이 먼저 알아채고 얘기한다고 했다.  

셋째 언니의 이런 변화가 내게는 무척 반갑고 감사하다. 막내라는 이유로 여자 형제들의 고달픈 삶에서 비껴갈 수 있었던 나로서는 공부에 대한 언니의 열정과 그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통해서 마음속 깊숙이 쌓여 있던 얼마간의 부채를 덜어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것조차 아름답다고 느꼈다. 

같이 공부하는 동년배가 많다고 했다. 그들끼리는 서로를 독려하며 끝까지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했다. 이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졸업 후에 받게 될 자격증 때문도 아니고 학사 학위 그것이 목표도 아니며 단지 공부가 공부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4교시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 30명의 아이들 중 12명이 쓰러져 있었다. 이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도 한참 더 위의 세대인 1970년대 미싱공의 학구열을 어떻게 이해할까? 본인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금의 자리와 공부의 가치를 나중에라도 알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미싱타는 여자들 #언니의 세계 #늦은 학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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