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평화방송·평화신문 제공
어두운 터널을 어렵게 빠져나왔는데 바깥 사회는 중앙정보부 지하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갇혀 있을 때 광주소식을 어렴풋이 들었으나 그토록 엄청난 살육이 자행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오래 지속되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조직하여 3권을 농락하고, 어용기구로서 입법회의를 만들어 각종 악법을 쏟아냈다. 전두환이 임명환 입법위원 81명 중에는 천주교 대구교구의 이종흥ㆍ전달출 두 사제도 포함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함세웅은 두고두고 안타깝고 부끄럽게 여겼다.
국회를 해산하고 그에 대치된 입법회의의 위원으로 각계 망명가들을 대거 임명했는데 그 중에는 대구교구 이종흥ㆍ전달출 두 사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유신체제 비판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사제는 정치현실에 초연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늘 정의구현 활동에 찬물을 쏟았던 대구교구장은 불의한 정권의 입법위원으로 두 사제를 공식으로 파견한 셈이 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제의 입법위원 문제는 1980년 내내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 사제들이 주교회의에 공식적으로 질의했던 내용이다. (주석 1)
함세웅은 망가진 몸을 추스르면서 공사중인 한강성당의 준공을 위해 신자들과 힘을 모았다. 살벌한 사회분위기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정의구현사제단 역시 한동안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1981년, 40세가 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끌고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몇 차례 투옥 등 숨가쁘게 30대를 보내고 어느덧 불혹의 연배가 된 것이다.
1981년은 한국 천주교의 의미 있는 해이다. 교황청의 대리감목구(代理監牧區)로 지정된 지 150주년이다. 바꿔 말해 북경교구의 관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조선교구가 설정되어 150주년을 맞은 것이다.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었다.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미사가 여의도 광장에서 80만 신도가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 그는 시대적인 아픔, 신군부의 만행, 광주의 아픔을 공유하는 집회가 되도록 준비위에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진행된 미사에는 신자들 외에도 시대적 아픔을 겪는 많은 시민들이 천주교에 의탁하려는 마음으로 참석하여, 언론에서는 참석자가 '100만 명'이라 보도하였다.
1981년 150주년 행사에서 아쉬웠던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회적 메시지가 없었다는 거죠. 150주년 행사 자체가 광주와 직접 상관된 것은 아니었고 또 그걸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김수환 추기경은 광주의 아픔과 그 이야기를 언급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 언론은 가톨릭의 여의도 행사를 무섭게 칭송했어요. 왜냐하면 언론 보도대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모였던 여의도지만 미사 끝난 다음에는 정말 종이 한 장 없이 깨끗했거든요. 그 즈음 과천 어린이대공원이 개관식을 치뤘는데, 그날 쓰레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대요. 이 둘을 비교하면서 가톨릭을 칭송하는 거예요.
저도 가톨릭 신자로서 기분이 참 좋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다 군사문화의 산물이었거든요. 제가 강론할 때 신자들에게 그랬어요.
"과천어린이대공원에 모였던 모든 분들을 여의도광장에서처럼 교구별 본당별로 줄 세워놓고 기도하고, '오늘 미사 끝나면 쓰레기 다 주워가세요' 했으면 그분들도 똑같이 주워갔을 것이다. 여의도에 모였던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과천에 풀어놨으면 똑같이 쓰레기를 투기했을 것이다. 규제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가치가 없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면서 신자들을 일깨웠습니다. (주석 2)
함세웅은 여의도 행사가 비록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진 못했으나, 추기경 강론의 한 대목을 자신의 대담 기록에 남겼다.
"천주교는 소금인가 방부제인가" 라는 성경말씀을 묵상한 다음에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 중에 뚜렷이 기억나는 대목이 있어요. 그 며칠 전에 수녀님과 노동자가 추기경을 찾아 왔대요. 한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추기경님,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공동체와 구성원들이 과연 소금입니까? 제 생각에는 소금이 아니고 방부제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추기경도 의아해하셨다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 깊은 뜻을 깨달으셨다는 거예요. '방부제는 부패는 막지만 생명은 죽인다. 오늘날의 교회도 때로 부패는 막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죽이는 방부제의 역할에 불과하지 않느냐. 소금이 되어야 부패도 막고 생명도 보전한다.' 노동자의 말을 듣고 추기경이 반성하면서 그 대화를 공개한 거예요. 저는 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정말 1981년의 살아 있는 메시지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주석 3)
주석
1> <암흑 속의 횃불(4)>, 27쪽.
2> <함세웅신부의 시대증언>, 273쪽.
3> 앞의 책,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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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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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교구 150주년, "소금인가, 방부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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