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 팽나무그늘 아래에서 이숙자 작가와의 정담. 쏟아지는 질문과 웃음소리에 말랭이동네가 들썩거렸다.
박향숙
책방 '봄날의 산책'을 열면서 마음속으로 기획했던 첫 번째 일은 '지역작가와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작가와의 만남 시 작가 섭외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설사 알고 있는 작가라 해도 선뜻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 책방들처럼 공모전에 통과하여 지원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펀딩으로 책방을 후원하는 시스템도 어려우니, 책방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봄날의 산책'에서 기획하는 '지역작가와의 만남'은 그 색깔을 달리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렸다. 최소 올해는 작가 섭외에 들어갈 비용을 작가들이 온전히 기부로서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렸다. 책방의 선물은 기껏해야 책 한 권이다. 문학이라는 씨를 온전히 지역민들과 함께 나누고픈 나의 선한 행위를 믿고 도와주시는 거였다. 일 번 타자 이숙자 작가는 역시 깊은 물이자 큰 배의 주인으로서 나의 제안에 흔쾌히 대답해주셨다.
지난 14일 매시간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월명산너울이 책방 앞 팽나무에까지 흘러왔다. 초봄에 잎사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무슨 나무인지 몰랐는데 마을에 심는 대표적 수종인 팽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매일 무성하게 자라나는 이파리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신록의 그늘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 행사를 앞두고 '비만 오지 않는다면 저 팽나무 그늘 아래 방문객 모두 초록으로 지쳐보자'라며 기도했다.
언제나처럼 이숙자 작가는 티 세트와 간밤에 만든 아카시아 떡을 가지고 오셨다. 당신이 손수 손님에게 드릴 떡과 차를 준비하시고 나는 당신이 작명해준 '군산작가와의 아름다운 정담(情談)'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책방지기들 역시 의자와 탁자를 정원의 팽나무 그늘 밑으로 옮겼다. 누가 봐도 정담 장소로 최고인 '봄날의 산책'이었다.
한명 두명 지인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우연히 책방을 방문했다가 행사내용을 듣고 찾아온 이도 있었고, 타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온 이도 있었다. 십여 명의 손님을 모시고 행사의 내용을 설명하고 작가님을 소개했다. 수줍은 소녀 같은 미소로 정말 수줍게 말문을 연 작가님의 나이를 듣고 모두가 놀랐다. 한참 아들딸 같고 손주 같은 손님들과 정담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세대를 넘어선 긴 인연의 끈이 한자리에서 매듭을 지으며 또아리를 튼 모습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글을 쓰면서 변화한 당신 삶의 모습을 전해 듣는 우리들이야말로 팽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방울들이 내뿜는 생명의 에너지를 다 받는 듯했다. 부부간의 삶, 부모와 자식 간의 삶, 형제들 간의 삶, 지인들 간의 삶, 타인들과의 삶, 그 모두가 글을 쓰면서 더욱더 평화로워졌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노년의 황혼기에 글을 쓸 수 있는 삶은 정말 축복이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