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따라 북악산길창의문에서 숙정문으로 넘어가는 북악산길
이정근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앉았다고 해서 시비가 붙은 법흥사 터에서 보듯이 김신조 사건 그 이전에는 사찰이 있었고 그 절집을 드나드는 신도들이 있었다. 또한 고종이 시음했다고 알려진 백악산 중턱에 있는 만세동방 약수터는 삼청동 사람들이 아끼는 옹달샘이었다.
길 건너 인왕산 쪽은 더욱 여건이 좋았다. 조선 선비들이 계회(契會)할 때 우선순위로 선호하던 청풍계곡과 필운대 쪽은 무시로 드나들었고 수성동 계곡에 있는 약수터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었다. 그러던 것이 1.21사태 후, 수경사 군인들이 철조망을 치고 주둔하게 되었고 그 후 남북화해 시대가 열리면서 군인들은 철수하고 그 자리에 전투경찰이 대체되었다.
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창의문에서 숙정문에 이르는 구간이 출입금지에서 해제 되었다. 그리고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 나머지 구간 삼청쉼터에서 법흥사터를 지나 청와대 전망대를 찍고 칠궁에 이르는 내밀한 구간이 개방된 것이다. 하지만 신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빛이 바랬다.
조금 더 일찍이 개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유(불)리, 호(불)호,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백악산으로서는 다행이다. 남북 대치와 이념의 폐해로 무거운 철조망을 두르고 있었으니 이제 백악산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