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2.5.20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 직원으로부터 공장 내 시설과 장비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그런 후 대통령은 피터라는 이름의 그 미국인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거든 "투표하는 걸 잊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은 "뜬금없다"면서 고령의 대통령 입에서 나온 "또 하나의 실언이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오갔다고 보도했다. 또한 역대 최저치의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이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의식해 "한 표라도 더 확보하려는 절박감"을 드러냈다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바이든의 말이 의미하는 것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보통 사람들이 정부 운영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그 일을 책임지는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투표다.
상대편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야 공직에 임할 수 있고, 그래야 자신과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에 좀 더 가까운 방향으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라는 공익과 자기 직업 보장이라는 사익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꼭 투표하라"고 동료 시민들에게 말한다.
그건 우리에게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 일상적으로 하던 인사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도 동료나 가족, 어르신들에게 늘 이렇게 인사하지 않았나? "식사 허셨습니까?" "밥 무쓰요?" 그 인사말이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에겐 "투표하세요" "투표하는 걸 잊지 마세요"다.
게다가 바이든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꽤나 놀랄 만큼 오랫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왔다. 로스쿨 졸업과 함께 짧은 기간 변호사로 활동한 후, 바이든은 1970년 지방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년 임기를 마친 뒤에는 연방상원 선거에 출마해 내리 6선을 이어갔다. 상원의원 임기가 6년이니 36년간 델라웨어주 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의회인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수십 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옹호자(champion of working people)'로 이름을 알린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표를 얻지 못해 버락 오바마의 러닝메이트가 됐고, 이후 8년간 부통령으로 일했다.
임기 절반을 맞는 대통령직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시민들의 투표로 공직에 머문 기간만 도합 46년이다. 그런 사람이 해외에서 공장 시설을 설명해준 미국 시민에게 "투표하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한 건 반갑고 고마운 버릇 같은 인사말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는 이 말이 뜬금없거나 속내를 들켰거나 말실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로서는 정치가 왜 중요한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언론의 태도를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우리 언론은 정치인의 부정부패, 선거전략, 프레임, 이벤트,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여론조사에는 크게 주목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그런 일을 할 때 시민들의 지위와 역할이 어떻게 퇴색하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이 투표에 대해 말하면 다른 어떤 의중이나 전략, '꼼수'가 숨어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한 실언으로 치부해버린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