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여행 안내서
최성연
그런 사람들이 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쓴 책이 바로 김연미 작가의 <알다시피 제주여행>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도민으로 정착한 지 일 년이 채 못 된 나도 이제 조금은 이 섬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일 이 책을 기계적으로 소개한다면 4.3 항쟁을 중심으로 구성한 제주도 다크 투어(Dark Tour) 안내서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매력이 이렇게 무미건조한 말로 요약될 수는 없다.
실제로 여행 안내를 받고 싶은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주 수월하게 잘 읽히면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굉장히 알차고 감동적인 여행이 될 수 있는 탁월한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제주도 사는 친한 언니가 공항에서부터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는 느낌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서 제주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토박이 작가의 편안한 설명이 바로 내 옆자리에서 들리는 듯하다. 책 속의 문체는 분명 문학적이며 시적인데도 정겨운 구어체로 들리니 참 묘한 일이다.
더욱 묘한 것은 책이 안내하는 데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글을 읽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시공간을 감각적으로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공간은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입체화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매함 없이 명료한 서술이지만 그 서술은 결코 어떤 틀도 만들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가지 않기에 제주의 바람처럼 시원하고 바다처럼 막힘이 없다. 이 바람 속에 떠다니는 꽃잎, 혹은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고깃배처럼 책 속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제주 예술가들의 시와 그림이다.
다크투어라는 특성상 독자의 상상 속에 펼쳐진 역사의 장면은 말할 나위 없이 끔찍하고 참혹하지만, 그 슬픔과 분노가 나를 짓눌러 쓰러뜨리기보다는 오히려 굳건히 세워주는 힘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이 섬의 맑고 깊은 생명력을 평생 호흡해온 작가가 그 호흡으로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제주에 와서 한껏 밝고 한껏 신나고 한껏 편안해도 모자랄 판에 다크 투어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답하기가 어렵다. 사랑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근사한 사진 대신 조금 쓰라린 마음의 사진을 한 장 찍어서 간직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우울했던 사진이 내 삶의 어떤 순간 나를 위로하는 가장 따뜻한 친구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알다시피 제주여행
김연미 (지은이),
연인(연인M&B),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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