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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놔두고, 차 태워 멀리 학원 보내는 이유

화물차 쌩쌩, 오토바이 불법주행... 어른이 설계한 도시에서 어린이가 사는 법

등록 2022.06.06 11:35수정 2022.06.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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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봉이 생기고 나니까 학교 가는 게 훨씬 덜 무서워요."
"안전봉이 생기고 나니까 학교 가는 게 훨씬 덜 무서워요."월간 옥이네
 
봄이 오면, 각종 꽃이 피고 여린 이파리가 돋아나듯 어린이가 있는 곳에도 웃음과 밝은 기운이 넘쳐난다. 그러나 여린 이파리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짙은 초록이 되고, 5월이 지나가는 것처럼 어린이도 금세 자란다.

코로나19로 시간이 멈춘 듯했던 지난 3년, 그 사이 초등학교 1학년생이 고학년, 4학년이 곧 중학생, 중학교 1학년생이 고등학생이 되는 걸 떠올려보면 더 실감이 난다. 빠르게 지나가기에 더 소중한 어린 시절이다.

돌아보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이지만, 사실 어린이의 삶은 어른의 생각만큼 밝지만은 않을지 모른다. 걱정되는 것도, 두려운 것도 많다. 하지만 세상은 어른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간만 보아도 그렇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놀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시커먼 주차장이 자리 잡았다. 공간뿐일까,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해야 한다. 어른이 설계한 도시에서 어린이는 어떤 모습일까.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본다.

학교가는 길

아침 8시, 최현세 어린이(10)가 졸린 눈을 비비며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충북 옥천읍 가화리에서 죽향초등학교까지, 어머니 최정숙씨의 자가용을 타고 학교 가는 길이다.

학교에 가까워지자 곳곳에 '어린이 보호구역'을 알려주는 표시가 눈에 띈다. 붉은색으로 덮은 도로, 30km 주행 안내 표지판, 주황색 조끼를 입은 스쿨존(school zone, 학교 앞) 지킴이 어르신들까지.


교문에서 떨어진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나면 여기부터는 현세 어린이가 직접 걸어간다. 코너를 돌자 본격적인 등굣길. 주황색 '안전봉 등하굣길'로 인도가 구분된 길로 오가는 다른 어린이들도 보인다.

"어, 현세야 안녕!"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친구 덕분인지 교문까지 가는 길이 짧게 느껴진다.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등굣길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등굣길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죽향초 등하굣길에 안전봉을 활용한 인도가 생긴 것은 1년 전인 2021년의 일이다.
충북 옥천 죽향초 등하굣길에 안전봉을 활용한 인도가 생긴 것은 1년 전인 2021년의 일이다.월간 옥이네
 
교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노란색, 흰색으로 칠한 보도. 어린이들은 보도 위를 지나 교실까지 걸어간다. 교내 진입 차량이 오가며 생길 수 있는 사고 위험을 피하고자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 만든 시설물이다. 지금은 날씨만큼이나 화창하고 안전해 보이는 등굣길이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전에는 학교 앞에 차도 많이 다니고, 안전봉도 따로 없었어요."

죽향초 등하굣길에 안전봉을 활용한 인도가 생긴 것은 1년 전인 2021년. 그전까지 어린이들은 3m 남짓 좁은 도로에 차량과 뒤섞여 다녀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통학로 교통사고로 이어져 어린이와 학부모를 위협하곤 했다. 같은 해 옥천교육지원청 교육환경개선사업으로 교문 안 보·차도 분리 공사가 이루어져 교문 안쪽 안전도 나아졌다.

"안전봉이 생기고 나니까 학교 가는 게 훨씬 덜 무서워요. 교문 안쪽에도 선생님 차가 다닐 때가 있었는데 새 길이 생겨서 이제 많이 안전해진 것 같아요."

학교 인근은 이전보다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겁이 나는 곳도 있다. 차를 타고 등교하는 길, 우시장삼거리다. 옥천읍 매화리에서 가화리로 이사한 이후로 현세와 최정숙씨가 매일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신호등은 신호를 알려주는 대신 노란색 불빛을 깜빡이는데, 그 때문에 종종 위험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대형화물차가 많이 지나는 이 길이 현세는 무섭다고 말한다.

"한번 다른 차랑 부딪힐 뻔했던 적이 있거든요. 여기에 제대로 된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걸어가는 길인데 인도가 없어요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학교가 끝나면 어린이들이 집 혹은 학원, 돌봄공동체 등 또 다른 장소로 발을 옮긴다.

장진혁 어린이(8)는 학교 일정이 끝나면 삼양초등학교에서 인근 돌봄 장소까지 혼자 걸어간다. 입학한 지 한 달을 갓 넘긴 시기, 홀로 걷는 게 무서울 법도 한데 교문을 나와 씩씩한 발걸음을 옮긴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도 사 먹을 줄 알지만 사실 혼자 돌아오는 일은 그에게 꽤 두려운 일이었다.

"처음 혼자 걸어갈 때는 엄청 무서웠어요. 도로에 차가 쌩쌩 지나거든요. 그럴 때면 저는 그냥 막 뛰어갔어요."

방과 후, 진혁 어린이는 익숙한 듯 어딘가로 향한다. 인근 돌봄 공동체인 '금구모두모여돌봄소'다. 삼양초 뒤쪽 옥천경찰서 건물을 지나 금구1어린이공원이 있는 언덕을 넘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인근 하굣길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인근 하굣길월간 옥이네
 
 "오토바이 다니지 말라고 이렇게 표지판에 쓰여있는데 다들 그냥 가요."
"오토바이 다니지 말라고 이렇게 표지판에 쓰여있는데 다들 그냥 가요."월간 옥이네
 
걸어서 10분 남짓, 가까운 거리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옥천경찰서로 이어지는 길은 차가 통행할 수 없도록 조성돼 비교적 안전하게 느껴지지만, 이곳에서도 안심할 수는 없다. 이따금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가는 탓이다.

"오토바이 다니지 말라고 이렇게 표지판에 쓰여 있는데 다들 그냥 가요."

옥천경찰서를 지나자 금구1어린이공원 언덕길이 펼쳐졌다. 진혁 어린이가 가장 겁을 내는 길이다. 인도가 있는 곳은 일부 구간뿐, 걷는 길 대부분이 차량으로 둘러싸였고, 제대로 된 인도가 없다. 진혁 어린이는 주차된 자동차 틈새를 외줄 타듯 건넌다. 갑작스레 차를 마주치는 것보다는 좁은 길을 지나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처음 입학하고 일주일 정도는 하굣길을 같이 다녔죠. 제가 일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멀지 않은 거리라 혼자 오는 연습을 시켰어요. 이곳저곳 다른 길도 찾아봤지만, 아이가 옥천경찰서로 오는 길이 제일 나은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

어머니 김혜영씨는 자녀가 잘 오리라 믿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을 놓을 수 없다. 길에 인도가 잘 만들어져 있었더라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공원 이름도 '어린이공원'이잖아요. 적어도 그 주변은 어린이가 마음 놓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인도가 설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단을 인도로 바꾸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여성안심길'이라고 도로에 색을 입혔는데, 물론 보기에 화사해졌고 잘한 일이지만 인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죠."

통학 길이 걱정돼 학원 보내요

진혁 어린이처럼 도보로 이동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모님 혹은 학원 차량을 통해 하교하는 어린이가 대부분이다. 학교를 마칠 시간, 덕분에 학교 앞은 각종 학원 차량으로 북적인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란색 '어린이보호차량'이지만, 사실 이러한 차량은 학부모가 학원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존재다.

현세 어린이 역시 학원 차량을 통해 방과 후 장야리 소재 태권도 학원에 향하곤 하는데, 어머니인 최정숙씨는 학교에서 더 가까운 태권도 학원 대신 이곳을 택한 것이 "'통학 차량'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혜영씨 역시 또래 학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통학 길 안전'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김혜영씨 역시 또래 학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통학 길 안전'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월간 옥이네
 
"직장을 다니면서 하굣길을 함께해주기가 어렵거든요. 그렇다고 혼자 다니게 하는 것은 걱정이 돼요. 학원을 등록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이왕이면 가까운 학원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겠지만, 이동 안전이 걱정돼 학원 차량이 있는 곳으로 보내게 됐어요."

김혜영씨 역시 또래 학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통학 길 안전'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학원이 자녀의 하굣길까지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노는 것은 둘째, 안전이 첫째

한창 놀아야 할 나이, 부모는 자녀가 여러 학원을 다니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방과 후 안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마땅히 마음 놓고 보낼만한 놀이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아파트나 주변에 놀이터가 있기는 하네요. 하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가 없고 관리하는 분도 없다 보니 가는 게 꺼려지죠. 그나마 자주 찾는 곳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내 마당인 것 같아요. 키즈카페에서 놀기도 하지만 이곳은 영업소여서 매번 가기는 힘들고요."

최정숙씨는 놀 곳 없는 자녀의 입장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러한 고민 중 알게 된 '실개천마을학교'가 요즘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실개천마을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이곳에 보내고 있어요. 오후 7시까지 운영하니 직장에서 헐레벌떡 나오지 않아도 되죠. 돌봐주시는 분들도 대부분 죽향초 학부모님들이고 다양한 활동을 해주는 덕분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요. 이곳이 이전에 제가 생각했던 '놀이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와 학부모는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린이가 마음 놓고 놀기에 주변은 여전히 불친절했다. 어린이에게 도로는 어쩌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깊은 바다, 어린이보호차량은 구명보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에게 허락된 공간, 어린이가 마음껏 걷고 놀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다음기사] 오후 4시, 아이들이 원하던 '진짜' 놀이터가 열린다 http://omn.kr/1z8ry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인근 하굣길
충북 옥천읍 죽향초등학교 인근 하굣길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59호 (2022년 5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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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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