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노동자들은 사회에 만연한 생존 불안, 미래에 대한 비용 부담 증가, 젠더 이데올로기 변화 과정의 갈등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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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까지 청년 여성 정신건강과 관련된 정책적인 흐름은 어떠했을까? 청년 여성에 대한 자살 예방정책 및 정신건강 관련 활동을 평가하기 이전에, 먼저 청년여성 자살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가 어떠한 기제로부터 비롯되는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떠한 정책적 접근이 가장 중요한지 주장할 수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현실 속의 정책활동을 평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노보연 여성노동건강권팀에서는 청년 여성의 정신건강 악화라는 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가설이라도 세울 수 있으려면 노동의 경험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18명의 청년여성을 심층 면담했다. 해당 연구에서의 주요 발견 지점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청년 여성'의 삶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를 '교차성'이라고 부르든, '중층 결정'이라 하든, 청년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모순들의 집합은 서로 같지 않았다. 예컨대 같은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 여성노동자들이 놓인 조건은 달랐고, 그 외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소수자 정체성, 대졸과 고졸 학력 간에는 소득격차와 같은 양적 차이는 물론, 질적인 경험의 차이도 있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불안정 일자리와 고용시장의 특성 변화에서 기인한 사회에 만연한 생존 불안, 경제적 취약성과 미래에 대한 비용부담 증가, 사회적인 젠더 이데올로기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등은 공통된 문제이고, '사회적 요인'으로 보였다. 정신건강의 보호 요인으로는, 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 노조의 존재,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존재를 꼽을 수 있었다. 덧붙여, 연구 참여자들이 원하는 대안은 주거 안정화, 일터 내 민주주의 실현, 고용안정 등이었다.
심리적 개입보다 차이에 기반한 '1차 예방'이 필요
그러나 지금까지의 2030 여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개입은 상당히 개별화되고, 지엽적이며,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한 조치들과 차이가 없는 심리지원 중심이었다.
20~30대 여성들은 국무총리 산하의 자살예방위원회에서 세운 2020년 3차 자살 예방 대책에서 처음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는데, 가장 최근인 2021년 4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30대 여성 대상 정서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전부이다. 물론 특정 사회적 집단이 어떠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 그 문제의 조건과 기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불분명함과는 대조적으로 그것들을 밝히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30대 여성들은 다른 연령대와 성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개입에 거부감이 적다. 이 말의 의미는,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개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 지원 강화는 특별한 대책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2030 여성들의 정신 건강 정책을 비롯한 정신건강을 위한 개입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교차하는 여러 집단 간의 '차이'에 중점을 둔 정책과 활동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청년 여성'의 정신건강을 얘기하는 이유는 그들의 정신적 고통이 가장 크다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정책 과정- 계획부터 모니터링까지-에는 공리주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떠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은 쪽이 개입의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소수 집단, 예컨대 이민자나 성소수자 집단의 정신건강은 문제화 되지 못하게 된다. 청년 '여성'의 차이를 고려할 뿐 아니라, '청년 여성' 내에서도 다양한 조건들이 어떻게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는지 살피는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조기 발견 조기 개입'의 2차 예방을 넘어서 1차 예방을 강조해야 한다. 1차 예방 중에서도 생활 습관이나 사고의 방식, 회복 탄력성과 같은 개인적 요인보다는 사회환경적인 요인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청년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중장년 소상공인을 위한 마음 처방전'이라는 캠페인 자료를 보면, 중장년 소상공인의 표준이 남성이라는 불합리한 전제는 접어놓고라도, '자기 관리를 연습하고 배우기', '나의 삶에 대해 생각 바꿔보기', '가족들과 솔직히 대화하기'를 골자로 개인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하필 '소상공인'을 지목한 이유는 이들이 코로나 범유행 시기에 많은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정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지워진 방역 정책'에 의해서 그들의 정신건강이 취약해져 있다는 점을 우리가 이미 아는데, 이에 대한 처방 없는 개인 실천이 설득력이 있을까?
셋째, 정신의학적 모형은 물론 심리·사회적 접근보다도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의 정책 브리핑이나,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홈페이지, 기타 정부 기관의 보도자료를 보더라도 주로 심리지원에의 강조가 두드러진다. 각 고위험군에 대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청년 여성이 선호하는 매체를 통하거나, 대학 등과 MOU를 맺어서 하는 상담을 해법으로 내어놓는다. 그렇다고 단지 재난지원금과 같은 한시적인 경제적 지원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로 인한 고용의 불안정성, 생존 불안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청년 여성당사자의 성평등 의식 수준에 뚜렷이 대비될 정도로 일터와 사회에 만연한, 젊고 경력이 짧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뿌리 뽑을 제도적 장치 역시 필요하다.
다 써놓고 보니 이미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만 글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2030 청년 여성들이 종사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일선의 정신건강복지센터 및 자살예방센터 노동자들의 소진과 대리 외상 예방에 대해서도 필요한 관심과 조치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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