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부터 12일(현지시각)까지 뒤셀도르프 '춤의 극장'(Tanztheater)에서 볼륨 업 페스티벌이 열렸다. "학교 다닐 땐 언제나 성적이 좋았지만, 간호학교 다니면서는 적당히 공부했다" 만화로 묘사된 간호사 이주 이야기를 낭송하고 있는 작가 빈아 윤.
강여규
볼륨 업 페스티벌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개인의 이주와 삶을 위한 투쟁과 생활의 이야기이지만, 그 개인사를 볼륨 높여 들을 때, 우린 그것이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세대의 이야기 한 집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유럽 주류사회와는 다르게 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주변인들과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래인 취급을 받는 대중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와 음악이란 매체가 전하는 복합 효과
5일 오후 만화낭송회(Comiclesung)를 통해 소개된 빈아 윤의 '홈스토리즈' (Homestories)는,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오스트리아 한인들과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 소재를 수집하고 원고 초안을 만든 후 만화작가와 함께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빈아는 "당신의 이름은 이제 수잔나"라는 말을 들으며 원래 한국이름보다 수잔나로 불린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빈아는 "엄마의 원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 한다. 주인공은 또 어머니 세대의 이주사 뿐 아니라, 이민자의 2세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세대가 일상 속에서 겪는 타자화의 문제를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게 전한다.
'홈스토리즈'의 매력은 여러 세대·여러 공간의 이야기를 담백한 선 몇 개를 통해 복합적인 감성을 전한다는 데 있다. 산문이 자칫 빠지기 쉬운 사변적인 표현, 영화 스크린을 채우는 비본질적인 요소 없이도 말이다. 만화 속 주인공 빈아의 얼굴 표정 혹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 얼굴은 주인공 혹은 같은 세대의 심경을 적나라하게 대변해 준다.
만약 이 모든 이야기를 산문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아마 한 권의 장편 소설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 세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빈아 세대
'고래사냥'처럼 해방구를 찾던 그 젊음을 안고 독일로 오스트리아로 간 여성들은 빈의 카페에서 처음으로 주문에 성공했을 때 뿌듯했다. 외로울 때는 김치를 해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그러나 빈아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고 1683년 오스만 제국의 2차 빈 침략과 터키인 무스타파 카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부터 빈 사람으로 자란다. 옆에 앉은 소녀는 침략자 무스타파에 대해 '두더쥐 같은 무스타파'라고 해도 빈아는 무스타파를 흉내내는 것도 재미있다. 2세들의 삶은 첫 세대와 또 다른 현실에 부딪혀 있고 그 해결 방법도 달랐다.
다른 이로부터 '프라이팬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납작한 얼굴'이란 무례하고도 상처되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빈아는 이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재생한다. 주변 사람과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종종 이방인 취급을 받는 아시아계 이주민 2세 빈아의 시선은, 그러한 일상 속의 차별 발언을 놓치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하여 만화 속 주인공 빈아가 화내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 춤추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빈아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본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이름을 가졌을까 하고.
이날 만난 작가 빈아 윤이, 내가 가져간 '만화낭송회' 포스터에 싸인을 하면서 두어 줄 적었다. 'I love Kimchi. I hate Racism. (김치를 좋아합니다, 인종차별은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