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등림사’는 조선 중기 문신, 금호 임형수와 송파 임식, 관해 임회를 배향하는 평택 임씨의 사우다
임영열
조선왕조 500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를 들라면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이라는 말이 맨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사화와 당쟁은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두 요소라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당파가 있었고 이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늘 상존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 중기,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까지 약 50여 년 동안 무려 4번의 큰 사화가 일어나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척박한 유배지의 귀양살이로 날개가 꺾여버린 선비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권력을 지키려는 특권 세력들의 무고와 농단에 맞선 개혁적 진보 성향의 '선비(士)'들이 기득권을 가진 훈구파들에게 '화(禍)'를 당했다 해서 후세 사람들은 이를 '사화(士禍)'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사화로는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