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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고와 질병에 시달리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9] 대학원 진학과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등록 2022.06.19 18:01수정 2022.06.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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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김지하, 콜렛 노어(Colette Noir), 김정남.
왼쪽부터 김지하, 콜렛 노어(Colette Noir), 김정남.전진상교육관
 
그의 대학시절은 시국과 관련 편안한 학기가 별로 없었다.

박정희의 권력강화를 위한 외교정책과 폭압통치에 학생들이 저항하면서 정국은 경색되고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학원은 꽁꽁 얼어붙었다. 

이 시기 그는 학생운동의 중심이었고 틈틈이 시작(詩作)을 하면서 20대의 젊음을 보낸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부실한 음식에 호기로 마셔댄 술 때문이다. 

폐결핵 증세가 심해져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해골처럼 마른 몸에 쿨록쿨록 끊임없이 기침을 하며 끊임없이 피가래를 뱉어냈다. 어떤 때는 기흉(氣胸)을 의심할 정도의 호흡장애도 왔다. 그러나 술은 끊을 수 없었고 이젠 술도 이미 술이아닌 아편이 돼버렸으니 독한 소주에 기껏해야 돌소금이나 사과 반쪽이 소주 한 병에 대한 안주의 전부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 때문에 서울로 직장과 집을 옮기려던 터에 마침 명륜동 명륜극장 영사주임 자리가 비어 있어 그리로 가시기로 하고 집을 이사했다. 가회동 입구에 방 두 개를 세들었다. (주석 1)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면서 25세인 1966년 8월에 7년 반 동안의 학생신분을 마감했다. 대학원 진학도 생각했으나 교수들에 대한 실망이 겹쳐 포기하였다. 그의 조숙한 시각인 지, 엄중한 시국으로 움츠린 것인지, 그의 눈에 비친 교수들은 하나같이 실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분명 미학 교수가 되려고 미학과에 간 것이다. 그런데 입학 초기부터 내 눈에 들어온 교수라는 사람들의 태도나 인품에서 도무지 학자는 커녕 평균적인 지식인조차 될 수 없음이 자꾸 드러나 실망의 연속이었다. 내가 학교에 적을 두었던 길고 긴 7년 반 동안 내내 이런 실상을 보았으니, 결국은 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교수 지망을 포기하기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능과 아집, 독선과 타협, 부패와 파벌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결함들이 아직 어리숙한 나의 눈에조차 확연히 드러나 보인 것이다. 미학과 역시 다른 과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주석 2)

대학원 진학과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고뇌와 시대고에 시달리던 그는 강원도 탄광에서 노동에 종사한다. 1967년 3월 폐결핵이 악화되어 서대문시립병원에 입원했다가 1969년 6월에 퇴원했다. 그 해 8월부터 12월까지 광고회사 코리아 마케팅에서 일했다. 그 사이 틈틈이 외국소설을 번역하고 대학생들의 연구활동에 참여했다. 


그가 신병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즈음, 박정희는 1967년 5월 3일 제6대 대통령에 선출되고 이어서 실시된 6.8총선을 부정으로 시종했다. 이를 규탄하는 서울시내 31개 대학과 136개 고등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으며 김지하는 1969년 11월 동향출신 조태일 시인이 발행하는 시동인지 <시인>에 '서울 길'을 발표한다. 박정희 정권의 공업화 정책으로 농어촌이 황폐화되면서 이농ㆍ탈농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몸 팔러' 가는 여성도 나타났다. 이같은 농촌의 아픈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서울 길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주석 3)


주석
1> 앞의 책, 105쪽.
2> <회고록(1)>, 342쪽.
3> <작가세계>, 2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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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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