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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받기 위한... '88일'간의 투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유족들의 투쟁, 동국제강 비정규직 이동우씨 산재사망

등록 2022.06.28 13:37수정 2022.06.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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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부인 권금희씨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부인 권금희씨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욱
 
"시간이 흐를수록 이동우씨의 억울함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커져요. 요즘은 '동우씨가 우리 아기로 환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요."

동국제강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이동우씨의 추모문화제(6월 17일)에서 배우자 권금희씨가 한 말이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새 생명이 배에서 자라고 있는데 남편 잃은 심정을 헤아리기 힘들다. 임신 초기에 남편을 잃고 생전 처음, 거리분향소에 나와 아침·점심 피케팅을 하는 모습이 이전부터 안쓰러웠는데... '환생'이란 단어에 담긴 권씨의 그리움과 아픔과 슬픔 그리고 사랑이 가슴을 찌른다.

3월 21일, 동국제강 하청업체 창우이엠씨에서 크레인 정비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 동우씨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출근했다.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결혼한 후 거듭된 유산으로 가족계획을 포기하던 순간 생긴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떠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임신 3개월째에 시작한 농성은 훌쩍 두 달이 지났다.
 
 동국제강 장세욱 대표이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민들이 적은 접착식 메모지 게시판이 분향소 옆에 설치돼 있다.
동국제강 장세욱 대표이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민들이 적은 접착식 메모지 게시판이 분향소 옆에 설치돼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유족의 거리 투쟁이 시작되다

유족들은 서울에 차린 거리분향소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고 후 대구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관리과에서 나와 현장조사를 했다. 이후 부검도 있었다.

그런데 원청인 동국제강과 하청업체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고 배상 협의 제안도 없었다. 8일이 지나서야 김연극 동국제강 공동대표이사인 사장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그는 회사가 선임한 변호사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해주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다고 했다. 김연극씨와 장세욱씨가 공동대표지만 사실상 장세욱씨가 실질적 대표라 할 수 있다. 동국제강의 소유자가 장씨 일가이기도 하고 연봉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공시된 자료에 의하면 작년 장세욱 대표이사의 연봉은 49억 원, 김연극 대표이사의 연봉은 8억 원이다.

4월 4일 원·하청을 모두 대리하는 변호사가 합의안 초안을 가져왔는데 배상만이 아니라 주로 회사 및 임직원 면책 중심으로 쓰여 있었다. 동국제강의 태도에 변화가 없어 본사가 있는 서울로 왔다.

4월 11일 서울 시민사회단체들과 간담회를 했고, 4월 13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입장문을 전달했다. 4월 18일 유족 대표와 사측 대표가 만났으나 회사는 유족의 요구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도 없이 "들어보기 위해 나왔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음날 시민분향소를 차리고 농성을 시작했다. 민주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라 회사를 압박할 동력이 없는 만큼 시민사회 연대가 중요했다.


노조가 없어도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그렇게 시작한 농성이 두 달이 넘었다. 아침 점심 선전전을 했다. 매주 화요일 점심에는 동국제강 포위의 날 선전전도 하고, 매주 금요일 추모제도 하고, 스님들은 매일 예불을 드리고 개신교에서는 매주 기도회를 했고,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이 수시로 와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선전전에 참여했다.


근처에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과 세종호텔 정리해고자들의 연대도 큰 힘이 됐다. 농성장을 차릴 때 함께했을 뿐 아니라 문화제 및 농성에도 항상 달려왔다. 본인들의 현안이 큼에도 자기 일처럼 여겼다.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에서 농성장을 책임지며 농성을 뒷받침했다. 멀리 구미에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라와 농성장을 지키기도 했다. 산재 사망 사고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매주 30분씩 하는 협상은 '시간끌기'용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자며 6월 2일과 3일 집중교섭을 제안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찍 끝내려 했는지 협의 중간 쉬는 시간에 나간 사측 대표들이 연락도 없다. 소식을 듣고 근처에 있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달려와 본사 건물 로비에서 연좌 농성을 했다. 일방적인 교섭 중단과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 분노한 것이다.

80일째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데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결국 밤 11시에 협의를 시작했고 이견을 좁히고 6월 7일 보기로 했다. 그러나 6월 7일 합의한 사과문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내용도 합의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유족들을 농락했다. 다시 싸워야 했다.

마침 6월 9일은 철강업계들이 모여 서로 자축하는 '철의 날' 행사가 포스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장세욱 대표이사를 만나겠다고 기자회견도 하고 피케팅도 했다. 기자가 인터뷰하려는데 밀쳐서 항의 성명도 냈다. 그래서일까. 6월 14일 재개된 협의에서 회사는 대부분 안을 받아들였다. 88일 만에 이동우씨의 산재사망에 대해 원청이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문에 합의했다.
 
 6월 16일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동국제강지원모임에서 진행한 고 이동우 산재 사망 합의결과 입장발표 기자회견
6월 16일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동국제강지원모임에서 진행한 고 이동우 산재 사망 합의결과 입장발표 기자회견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합의, 이젠 보낼 수 있게 됐다

합의 내용은 5개 항목이다. 장세욱과 김연극, 대표이사 공동명의로 동국제강 홈페이지 1면에 합의된 사과문을 일주일 동안 게시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ILS시스템을 설치 및 운영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제외하고,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한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돼 형사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협의한다. 마지막으로 쌍방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명시했다.

초기 제안한 대면 사과나 일간지 게재 사과 방식은 양보했다. 장례를 치러야 하고 임신 중인 배우자와 태아의 건강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합의한 사과 문구를 그대로 실은 건 큰 의미가 있다. 책임을 인정한 사과는 이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개념을 합의에 담았다는 점, 형사 처벌 문제는 합의와 별건임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가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유족과 시민사회 연대로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재발방지책을 받아낸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배우자인 권금희씨가 임신한 몸을 이끌고 끝까지 싸운 덕이다.

사실 이동우씨는 회사가 안전조치만 제대로 했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었다. 갑자기 천장크레인과 크레인 위의 회전체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안전벨트가 고인의 몸을 감아 조이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당시 천장크레인 작업자 배치에 앞서 천장크레인의 전원이 차단되지 않았고, 천장크레인 지상 신호수도 없었다. 천장크레인 상부 신호수의 신호에 따른 천장크레인 작동 등 정해진 신호방법에 따라 신호가 이뤄졌다면 이동우씨는 살았을 것이다.

동국제강에 맞선 투쟁은 '이동우씨도 같은 사람이라고, 비정규직도 똑같이 존엄한 목숨'이라고 외쳤던 시간이다. 88일의 시간은 동국제강이 그를 사람으로 새기도록 했다. 싸우는 애도는 권력의 비존재였던 이를 사람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이다. 이제 고인의 가족은 그를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는 슬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 '여기, 현장' 꼭지에도 실렸다.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중대재해처벌법 #산재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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