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시집
느린걸음
살 만큼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삶 속에는 무수한 견딤이 있었습니다. 큰 견딤과 작은 견딤, 오래 견딤과 짧은 견딤, 나를 위한 견딤과 타자를 위한 견딤. 만약 나에게 다가온 견딤이 오직 '나를 위한 견딤'이었다면, 오늘까지 잘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까닭, '사랑' 덕분입니다.
시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널 지켜줄게 / 그 말 한 마디 지키느라 / 크게 다치고 말았다'고요. 저 '다침'은 어떤 의미를 안고 있을까요. 저는 먼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다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프고 쓰려도 너를 지키기 위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낼 때를 생각해보면, 재미있게도 나를 위한 때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할 때였습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다친 후 나는 상처 입은 감정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너를 지켜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두 몸을 버리고 한 몸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다 /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 날 지켜주었음을'이라는 문장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박노해 시인은...
전라남도 함평태생으로 1983년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인은 1991년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이후 무기수로 감형되었으며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습니다.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 등 다수의 시집과 『오늘은 다르게』 등 다수의 사진·산문집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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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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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큼은 지켜주겠다던 약속'이 살린 자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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