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족령에서 내려본 동강
이보환
무덥다. 예년보다 강수량이 줄면서 강과 계곡을 찾는 이들이 적다. 이럴 때 숲 피서는 어떨까. 구불구불한 1차선 외길을 달린다. 오롯이 강을 따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 문희마을로 간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군 신동읍 경계에 있는 백운산의 들머리다. 문희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260호 백룡동굴이 있다. 백운산 등산 안내도를 보니 1코스 (6.7㎞ 약 4시간 50분)와 2코스(3.4㎞ 약 1시간 40분)로 나뉜다. 가볍게 걷기로 하고 2코스를 선택했다. 산새가 반겨준다.
높은 음의 소프라노가 솔로로 시작을 알리는 다른 산들과 달리 화음이 어우러진 합창이다. 평지인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비탈길이다. 운동화에 가벼운 옷차림을 한 부부, 배낭과 등산화, 기능성 옷을 갖춰 입은 산꾼까지 다양하다.
자신의 체력이나 시간에 맞춰 걷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유롭다. 언제부터인가 정상을 찍는 것도 좋지만, '되도록 산에 오래 머무르자'는 주의자가 됐다. 높게 쌓인 돌탑 앞에 멈춘다. 두 손을 모으고 돌을 얹는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이것저것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요즘 주변의 일들을 생각해보고,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한다. 숲길에 자리한 덩치 큰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자생하는 나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모습에 가던 길을 멈춘다. '목석일체'. 결국 그렇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낙엽 쌓인 푹신한 길을 걸으니 발이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울창한 숲속 틈으로 빛나는 햇빛이 칠족령 안내판을 눈부시게 한다. 칠족령은 정선군 제장마을에서 평창군 미탄마을로 가는 고개다. 옛날 선비 집의 개가 발에 옻칠갑을 하고 도망갔는데,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동강의 장관이 수려해 옻칠(漆)자와 발족(足)자를 써서 '칠족'이라고 불렸단다.
칠족령을 중심으로 양쪽 1.5㎞가 숲길이다. 굴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활엽수들이 빽빽하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고 해도 이곳은 서늘하다. 영월 동강댐 건설을 막아 오늘 우리가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칠족령 전망대에 선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 기암, 깎아내린 절벽은 심청이 아버지 눈을 번쩍 뜨게 할 정도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