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뫼에서 학살된 정동기
정근욱
1950년 12월 6일. "하룻밤 더 자고 가라." 임옥례는 한 달 만에 집에 온 장남 정동기(1931년생)에게 말했다. 응세축산고급중학교 5학년 졸업반이던 정동기는 광주에서 자취를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쌀과 부식을 가지러 전남 함평군 집에 왔다. 그렇게 해서 정동기는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할지 엄마와 동생들과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정동기가 아침을 먹고 있을 때쯤 마을에 총성이 울렸다. "탕!" 밥상에 모여 앉은 식구들이 동시에 숙가락을 내려놓았다. 곧이어 군인들의 고함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다.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전부 밖으로 나왓!"
주저할 틈도 없었다. 군인들은 초가에 불을 붙이고 연신 공포를 쏘아댔다. 정동기와 여동생들은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임옥례가 아기 정근욱(1949년생)을 업으려는데, 아기가 악을 쓰며 울었다. "얘가 왜 이러나"하며 달랬지만, 아기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아기의 엄마와 아버지는 아기를 달래느라 집에 있었다.
해발 164m의 월악산 서·남 자락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와 월악리. 월악리 지변(못갓)마을 주민들이 팔열부정려각에 쭈그려 앉아 있을 때, "텅"하는 소리와 함께 마을 정미소와 김홍만의 외딴집에 박격포가 터졌다. 박격포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마을 앞 남산뫼로 올라가라고 다그쳤다.
주민들은 겁에 질려 남산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군인들이 젊은 여성들을 겁탈한다는 소문에 몇몇 처녀들은 급히 머리를 올리고 이웃집 아기를 업고 나섰다. 월악리 내동·못갓·성주 마을과 월야리 순촌·송계·동산·괴정 7개 마을 주민 약 700여 명이 야산을 뒤덮었다.(김영택, 『한국전쟁과 함평양민학살』)
"명당자리 잡아 주겠다"
남산뫼에 모인 수백여 주민들의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단순히 초겨울의 찬바람 때문만이 아니라 군인들이 쏘는 공포 소리와 매서운 눈빛 때문이었다. 이들 앞에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장 권준옥 대위가 나타났다.
"군인과 경찰 가족은 앞으로 나왓! 명당자리를 잡아 주겠다." 권준옥 중대장의 말에 일부 주민들이 쭈뼛주뼛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 중 정묘남은 경찰가족이라고 하고 남산뫼를 내려갔다. 하지만 영암경찰서에 근무하던 노흥용의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제 남편이 경찰이어라우"라는 말에 권준옥 중대장은 그녀의 머리를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함께 임신 9개월의 노흥용 아내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권 중대장은 "진짜 경찰 가족이라면 왜 이제까지 피난을 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똑같은 경찰 가족인데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야 했다.
청년방위대 장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정병오(당시 약 22세)가 증명서를 내보이며 "저는 방위군 소위인데, 후퇴를 못하고 있다가 여러분들이(국군)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준옥은 그에게 "뒤로 돌아 서!"라고 한 뒤 정병오의 뒤통수에 총 한 발을 쏘았다.
이어 연거푸 두 발을 더 쏜 다음 총소리는 멈췄고 정병오는 쓰러지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권준옥은 "이놈은 정말 나쁜 놈이다. 진짜 대한민국 소위라고 한다면 우리가 들어온 지 벌써 오래됐는데, 여태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나왔다. 더욱 괘씸하고 사상이 의심스러운 놈이다"라고, 마치 판사가 선고하듯이 외쳤다.
"이번에는 꼭 살려 주겠다"
만삭의 임산부와 청년방위대 장교가 총살당하자 남산뫼의 공기는 더 얼어붙었다. 소수의 군인·경찰 가족이 하산한 후 남은 주민 700여 명이 몰살될 판이었다. "중대장님. 여기 있는 주민들이 전부 빨갱이일리는 없쟎습니까?"라는 윤인식 선무공작대장의 건의에 권준옥은 뜨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노약자는 살려줍시다." "안 돼요!" 윤인식의 호소에도 권준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입이 굳어진 윤인식은 잠시 후 권준옥에게 "그러면 연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제야 권준옥은 윤인식(1923년생)의 말을 들었고 결국 17세 미만의 소년과 45세 이상의 장년들을 살려 주기로 했다. 17세 미만 소년들에게는 가옥들을 불태우라고 지시하고, 45세 이상 장년들에게는 가재도구를 챙겨 피난 가라고 했다. 사람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라며 하산했다.
남산뫼에 남은 이들은 생을 체념한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들 주변에는 기관총이 설치됐고, 사방에 군인들이 포진됐다. 권준옥의 "사격!" 명령에 기관총 3대와 M1 총구에서 불이 뿜었다. 흰옷에 피가 튀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엄마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아귀지옥이 달리 없었다.
한 차례의 격전(?)을 치른 남산뫼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권준옥 중대장의 호령이 이어졌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일어나라. 여러분은 하늘이 돌봐서 살아 있는 것이니 모두 살려 주겠다!" 그 소리에 50여 명이 비칠비칠 일어났다. 군인들은 이들을 한 켠에 세웠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나나 보다'라는 심정으로 서 있는 주민들에게 "사격!"이라는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함정이었다.
권준옥 중대장의 거짓말 대잔치는 계속됐다. "살아 있는 여러분은 하늘이 돌봐 준 것이다. 정말 일어나라. 이번에는 꼭 살려 주겠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주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짓말에 두 번 속을 그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대장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긴가민가했던 이들이 한두 명씩 일어났다. 한 열 명쯤 되었을 때 군인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당한 사기극은 클라이맥스를 향해갔다. "살아 있는 여러분은 진짜 하늘이 돌봐준 것이니 살려주겠다. 집으로 돌아가서 불을 꺼라!" 권준옥 중대장의 말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집에 가서 불 꺼라'는 소리에 그때까지 살아 있던 이들이 무의식 중에 일어났다. 이들이 마을로 뛰어가기 시작했을 때 남산뫼에는 다시 한번 콩 볶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인간사냥을 한 11사단과 권준옥 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