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마영달 원장.
최미향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들이 장애물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면서 결국 그 길로 들어섰다. 아빠로서 뿌듯할 것 같다.
"뿌듯하면서도 굉장히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대중화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선수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합에 나가기 시작했고, 조그만 녀석이 꼭 1등을 하니 여기저기 러브콜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가 해미읍성에서 체험승마, 마차를 하니 아들은 학교만 끝나면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말과 놀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관광객들이 '잘 탄다'는 얘기를 해주니 군중심리를 알게 되고, 그러면서 시합에 출전해서도 웃으면서 말을 탈 수 있었다. 뭘해도 기죽지 않은 것도 그 덕분이다.
아들은 방학이면 승마장으로 불려다녔다. 초등 저학년 녀석이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으니 '저 애도 할 수 있는데 내 아들도 할 수 있겠지. 내 손자도 할 수 있겠지'라며 아들이 한 번 승마장에 가면 회원이 무려 30~40명이 그냥 늘었다.
커나가면서 아들은 좋은 말도 많고 훌륭한 코치들도 많으니까 스스로 가방을 사서 한 달씩 다른 승마장으로 떠나곤 했다. 하지만 공짜 레슨도 한두 번이지 체계적으로 올라가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점핑 말부터 이래저래 억 단위가 넘는 돈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선수가 된다 해도 문제겠구나' 싶었다. 잘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국가대표선수가 됐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만만한 승마장 하나 가지지 못한 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양새가 되기 일쑤였다. '우리 아들도 나중에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정신이 퍼뜩 들었다.
중3 아들을 불러놓고 얘길했다. '아들아 네가 가는 길은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네가 승마 선수를 안 해도 좋다. 승마 관련 직업도 있고, 교수도 있다. 관련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얼마든지 취미 활동으로 말을 탈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아들이 '저는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아닌가.
이에 질세라 나 또한 '아빠가 고향 해미에서 니가 나중에라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겠다. 네가 말 관계 일을 한다면 후배 양성도 할 겸 뛰어놀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마. 그 대신 이제부터 지원은 없다. 결정은 네가 해라.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이제 방법이 없다. 네 말대로 나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보면 네 엄마 병 들어 잘못될 것 같고, 우리 가정 잘못될 것 같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라고 했다.
3일간 고민했던 아들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말밖에 없습니다. 저는 끝까지 제 자력으로라도 말을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했고, 나는 '알았다. 앞으로 모든 결정은 네가 해라'라며 아들의 결정에 더 이상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23살 아들은 여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말과 생활하면서 이제는 제법 밥벌이를 하고 있다. 생각하면 참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