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의 'mountain'
유영국
"내 그림은 생전에는 팔리지 않을 것이다"
갤러리를 찾은 우리들은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 옆에 붙은 '이름표'를 찾는다. 추상회화라 하더라도, 그 명명의 나침반을 따라 작품 이해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 갤러리에 전시된 유영국 작가의 작품에는 그 '이름표'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 'work'이다. 가끔은 '봄비'이거나, '산', '고요함과 평화로움'이지만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산'이라는 새삼스러운 명명이 무색하게 그의 빨갛고 파랗고 노란 산들이 그의 'work'에는 지천이다.
유영국의 추상을 이해하기 위해 20세기의 대표적 추상화가인 피에트 모드리안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세기 초반 당대 화가들이 그랬듯이 몬드리안도 입체파에 경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체파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어느 순간, 더는 본래의 대상을 구분하기 힘든 차원에 이르르자 몬드리안은 식별할 수 없는 대상을 그리는 것을 넘어 절대적 진리를 현현하는 그림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여러 그림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을 찾던 몬드리안이 찾은 건 삼원색과 흑백의 색과 선, 그 중에서도 직선이었다. 즉, 대상의 물성을 탈피해 낸 가장 순수한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찾아가는 순수의 지점, 이것이 우리가 보는 추상이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추상 회화의 세례'를 받았다. 김환기, 이규상 등과 함께 우리나라 추상회화 1세대를 이룬다. 1960년대 이전 초기 작품에서는 '마티에르'가 강조된 투박한 느낌의 화풍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가 김환기의 작품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질감'이 강조된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반 현대 미술가 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현대 미술 운동에 앞장서고, 신상회를 조직하여 젊은 화가들의 돕던 유영국은 1964년 이후 모든 대외적 활동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60이 될 때까지는 기초를 닦겠다'던 화가, 하지만 그의 그림은 60세 무렵 이병철 회장이 사줄 때까지는 팔리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미술 책에나 등장하던 유영국이란 화가를 알게 되었던 것도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어린 시절의 감흥이 되살아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