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학교와 오월어머니회가 춤공연에 나서다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 작년(2021)에 이어 인문학과 예술이 융합된 축제 '세계 지성이 광주를 말하다'를 518민주광장에서 진행했다. 이중 춤의학교(대표 최보결)와 오월어머니회(관장 김형미)는 '러브 앤 피스'를 주제로 시민 참여형 댄스 공연에 나섰다. 위 사진은 공연 첫 레퍼토리 '빨래' 장면이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오월어머니회(관장 김형미)와 춤의학교(대표 최보결) 춤벗들이 일렬로 섰다. 518 민주광장에서 '러브 앤 피스' 공연의 시작, 리드미컬한 음악 소리와 함께 우리는 빨래터 여인네로 변했다. 빨래 방망이 내려치는 소리가 광장을 울린다. 첫 번째 레퍼토리 '빨래'의 시작이다.
오월어머니회 선생님들의 빨래 두드리는 동작은 리얼리티가 느껴졌다. 빨래터라곤 교과서로만 접했던 나보다, 나이든 춤벗들은 더 역동적이었다. 시간을 예술로 승화한다면, 나이듦은 가장 중요한 조건일 테다. 청년은 노년을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빨래 두드리는 리듬 덕에 조금씩 몸이 풀린다. 고관절 통증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앉긴 어렵다. 하지만 자세는 덜 중요하다. 엉거주춤하면 엉거주춤한대로. 리듬을 최대한 맞추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나의 최선과 공동체의 리듬이 한 파동으로 퍼질 수 있도록.
경쾌한 소리에 마음도 풀어진다. 잠궜던 속내를 옆 사람과 나누다 보면 답답한 이야기도 털어진다. 그래서 세탁기 없던 시절, 누군가는 빨지 않아도 되는 천조각을 들고 개울가로 나갔다고 한다. 빨고 싶은 맘을 풀기 위해서.
이야기가 커지다 보면 동네 따끈따근한 소문이 빨래터를 휘어감기도 한단다. 어떤 이들은 서로 고함을 지른다. '빨래'의 절정, 싸우는 장면이다.
싸움 에너지는 잘 간수해야 한다. 하지만 빨래 공연에선 시원하게 발사해도 된다. 풀 길 없어 보이는 마음의 응어리, 이때만큼은 아주 매력적인 재료다. 마음의 화가 크면 클수록 빨래 공연에선 박수 받을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나는 제일 어렵다.
싸움의 정점에서 '빨래' 음악이 끝난다. 손가락질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몸들도 양 팔을 내린다. 읊조리는 듯한 허밍음을 배경으로, 분노의 몸이 천천히 움직인다. 비우고, 성찰하고, 나누고, 살기 위한 걷기. 두 번째 레퍼토리 '똬리 인사'의 시작이다.
춤벗들의 머리 위에는 삶의 무게가 얹혀 있다. 좀 전 빨래터에서 신나게 두드리던 내 빨랫감이다. 돌돌 똬리 틀어 머리 위에 올려놓고 걷는다. 앞 사람을 따라가는 긴 대열 속, 먹을 것을 채집하며 지구를 방랑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떠올랐다. 일렬로 먹을 것을 이고 가는 개미 떼의 경이로움을 상상했다. 기다가, 걷다가, 뛰다가, 넘어지고 말았던 내 과거를 불러왔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누구도 내 삶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 없다. 누구나 각자의 삶의 무게를 이고 간다. 누구나 내 무게가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 그렇게 내 삶은 세상에서 유일하다. 모두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모두가 동등하다. 지금 이렇게 함께 걷는 것처럼.
운명을 짊어진 채 걷던 춤벗들은 곧 서로 사이사이를 크로스한다. 다만 각자의 속도대로 걷는다. 빨리 걸을 필요도, 느리게 걸을 필요도 없다. 그저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에게 다가간다.
고개를 숙여 상대에게 인사한다. 고개를 따라 떨어지는 내 똬리는 상대가 받아준다. 마주한 이 역시 나에게 인사하면, 이제 내가 그의 똬리를 받는다. 각자의 똬리가 서로의 똬리가 되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삶이 상대에게 전해지며, 내 삶은 고통에서 선물로 바뀐다.
외로워 어쩔 줄 몰랐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겐 귀한 성찰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고통스러웠던 내 삶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다가갈 수 있다. 절망스러웠던 언젠가의 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삶일 때, 상처는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타인과 삶을 연결할 때, 우리는 인생의 연금술사가 된다.
서로의 똬리를 선물로 나누는 동작, 각자의 손끝으로 상대의 몸을 터치하며 각자의 역사를 상상하는 동작, 세상을 향해 나의 이야기를 손짓으로 전하는 동작을 이어간다. 허밍이 잦아들면 관객을 향해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삶, 선물이다. 이제 삶을 만끽하는 세 번째 레퍼토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순서다.
발끝이나 무릎, 어깨 끝으로 작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잘게 쪼개진 리듬의 음악이 점점 빨라지며 몸의 움직임도 점점 커진다. 즉흥적인 움직임으로 삶의 무거움도 기쁨도 모두 표현하는 부분이다.
모두의 삶이 담긴 선물, 똬리를 집어 하늘로 날리고 세상으로 던진다. 관객의 환호성과 함께 음악이 잦아들며, 마지막 레퍼토리 '꽃보다 아름다워'가 이어진다. 이제 서로의 삶을 축하할 시간. 신나는 음악과 함께 즉흥춤을 추는 오월어머니회와 춤의학교 벗들, 관객들도 이제는 그저 '함께 춤추는 벗'들이 된다.
누구의 상처도, 무게도 신경 쓸 필요 없이 가볍고 신나게 움직인다. 마법 같은 시간이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손잡고 방방 뛰거나 덩실덩실 어깨를 흔든다. 음악, 움직임, 사람이 함께 광장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
함께 춤추다 보면 가벼워진다
우리 모두가 함께 춤출 수 있는 인간임을 경험하며 공연 레퍼토리는 끝난다. 이제 마지막 순서, 공연을 준비한 오월어머니회와 춤의학교만이 아니라 광장의 모두가 참여하는 '평화의 춤'을 출 때다.
차분한 음악과 함께 방방 뛰던 몸들이 진정되기 시작한다. 옆 사람의 손을 잡으니 원이 만들어졌다. 큰 원으로 연결되어 앞 사람을 따라 걸었다. 일곱, 여덟 발자국에 앞을 향했던 몸을 원 안 쪽으로 돌렸다. 맞은편 사람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함께였을까.
손을 바닥으로 내려 손바닥과 땅을 연결한다. 손끝부터 땅을 쓸어 몸을 타고 올라온다. 무릎과 배, 얼굴을 지나간 양 팔은 하늘로 펼쳐지며 나와 옆 사람을 잇는다.
함께 춤추다 보면 가벼워진다. '나'를 옭아매는 인생의 사건, 사고, 즐거움, 기쁨 등 모든 맥락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오월어머니회 선생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과 분수대 앞. 이곳이 시간을 지나온 것만큼 길게 삶의 주름을 쌓아온 이들이, 춤으로 날아올랐다. 그렇다면 그 손을 맞잡은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땅을 딛고 삶으로 돌아왔을 때, 좀더 가벼워진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의 춤을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