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논과 어우러지는 방풍림. 짙게 물든 나무와 벼가 여름날을 대변하고 있다.
이돈삼
여러 해 전, '땅끝' 해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황량한 들녘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고목이 줄지어 있었다. 한눈에, 방풍림임을 직감했다. 줄지어 선 버드나무와 팽나무의 나이도 지긋해 보였다. 밑동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났다. 해남 윤씨의 옛집과 어우러져서 더 아름다웠다.
백방산(198m)과 사이산(162m)이 에워싸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다. 그 마을을 지난 17일 다시 찾았다. 계절을 달리해서, 초록이 짙어가는 여름날이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을 듯한 날씨다. 저만치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은 희끄무레했지만, 방풍림은 여전히 늠름하다. 버드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의 이파리도 무성하다. 흡사 마을을 지키는 문지기나 장승 같다.
방풍림 주변으로 꽃이 많이 피었다. 참깨밭에는 깨꽃이 하늘거리고 있다. 호박꽃, 참외꽃도 피었다. 넝쿨 사이로 어린 호박과 참외가 얼굴을 내민다. 가지런히 서서 키재기를 하는 고추밭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돌담에 기대어 핀 능소화의 자태가 요염하다. 돌담을 기어오른 계요등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하얗게 핀 인동초는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한적한 농촌이다.
고목 아래 놓인 정자에서는 이야기꽃이 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