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24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 강주성 간병시민연대 활동가(오른쪽)가 참석한 모습.
공동취재사진
나머지 '혈액백 비리'는 강 전 대표가 글을 쓸 당시엔 의혹이었지만, 이후 2019년 7월 공정위 조사로 비리가 확인됐다.
적십자사는 2018년 녹십자엠에스(녹십자)를 혈액백 공급업체로 선정했다. 그런데 강 전 대표 눈엔 "입찰에 붙을 업체가 떨어지고, 떨어질 업체가 붙은 결과"였다. 적십자사가 스스로 입찰 공고에 적은 기준이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미국약전위원회 기준'과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혈액백 내 포도당 함량'을 산정하는 기준이었다. 포도당은 수치가 높으면 세균 증식이 용이할 수 있어 수혈자 건강 관련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적십자사가 미국약전위원회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서 탈락한 경쟁 업체는 130여개 나라에 혈액백을 납품하는 외국계 회사였다. 같은 혈액백이 한국에서만 '불량품'이라고 평가받았다. 미국 기준에 따르면 이 업체는 자격에 부합했고, 녹십자는 미달했다. 더구나 적십자사의 계산 방식은 식약처 기준에도 반했다.
강 전 대표는 글을 쓰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도 했다. 공정위는 2019년 녹십자와 태광산업이 2011~2015년 적십자사에 혈액백을 함께 공급하며 가격 담합을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총 76억 9800만 원 과징금을 부과했고 녹십자 직원 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녹십자는 2009년부터 논란 직전까지 적십자사에 혈액백을 공급한 업체였다. 두 업체 입찰가는 논란 직전까지 200만개 기준 150여억 원으로 동일했다. 논란 후 경쟁 업체가 들어오자, 입찰가는 100억여 원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에서 적십자사는 빠졌다. 강 전 대표는 "담합의 조건과 토양을 제공한 핵심이 적십자사"라며 유착 의혹을 쭉 제기해온 터였다. 그는 당시 "누가 봐도 적십자사가 주도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데, 어떤 관계망에서 오랜 세월 독점 시장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며 공정위를 비판했다.
적십자사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혈액백 입찰 공고와 다른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표현과 '적십자사는 녹십자와 유착관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배경 사실에 기초한 비판이자 의혹 제기"라고 모두 기각했다.
적십자사 "허위사실 인정받은 승소"... 사건은 2심으로
이 소송은 처음부터 '전략적 봉쇄 소송'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공공기관, 공직자, 기업 등이 자신에게 불리한 비판이나 반대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입막음 소송'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1월 포스코가 자사 산재 문제를 보도한 포항MBC 기자에게 5000만 원을 청구한 손배소, 기업이 노동조합 파업에 제기하는 수천억 원대 손배소가 대표적인 예다.
강 전 대표는 20년 넘게 적십자사와 싸워 온 활동가다. 적십자사가 에이즈, 간염 등에 오염된 혈액을 유통시킨 비리가 드러난 2003년부터다. 강 전 대표는 그때부터 정부조직도 아니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도 분류하기 힘든 민간 법인인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혈액사업은 오롯이 국민들의 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십자사는 '봉쇄 소송' 주장에 대해 지난 7월 28일 "허위 보도로 국민들에게 적십자 인도주의사업과 혈액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며 "이에 따라 국민의 헌혈 참여 의지를 저하시켜 국민 건강권 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므로 이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한 보도내용 대부분을 허위사실 적시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하나, 적십자사가 입은 손해에 비해 손해배상액이 미치지 못한 부분을 고려해 항소 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강 전 대표는 "의혹의 본질이 아니라 지엽적인 내용에 배상 판결이 났을 뿐"이라며 "국내 혈액의 94%를 유통하는 독점 기구가 비판을 받는다고 어떤 손해를 입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판결을 비판했다. 나아가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해명도, 반성도, 근본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규명을 위해 추가 고발도 생각하고 있다"며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 전 대표는 지난 7월 2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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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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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의 '입막음 소송', 결국 배보다 더 커진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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