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4일 제150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로 열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일부 학자와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들이 굳이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말을 놔두고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정책이 피해자의 의사만을 절대시해 실패했음을 강조하는 데 이 용어만큼 선정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피해자 중심을 이념으로까지 승화시키는 극단적인 자세 때문에 이 문제를 유연하게 풀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에는 피해자 뜻을 신성시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배어 있는데, 이런 점을 악용해 문재인 정부를 역공할 때도 이 용어는 좋은 재료로 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의 많은 미디어는 위안부재단의 위로금을 대다수의 피해자가 수령했고 일부가 거부했는데 12.28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다수 의사를 무시하는 것, 즉 말로만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곤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종종 '살아 있는 피해자 절대주의'로 돌변해 쓰이기도 한다. 피해자가 모두 몇 명인데, 이들을 일일히 다 만나 의사를 확인했느냐고 묻거나 공세를 취할 때도 이 용어가 동원된다.
실상이 어떻든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잘못된 용어가 널리 퍼진 데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2017년 7월 31일 위안부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출범식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위안부 합의를 면밀하게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이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안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이 한 동안 무분별하게 사용됐고, 미디어들도 그대로 이 용어를 따라 썼다.
나중에 피해자 중심 접근으로 용어 사용을 바꿔 달라고 했지만 이런 주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미디어는 거의 없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이 상당 기간 쓰이면서 굳어진 용어가 된 데다가 이 말이 문재인 정권의 위안부 정책을 비판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고 봤기 때문에 알고도 그대로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해자 중심 접근' 용어가 적확한 이유
하지만 피해자 중심 접근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전혀 다른 말이다. 피해자 중심 접근은 한마디로 '인권과 관련한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련한 규범'이다. 대표적으로 '국제인권법 및 국제인도법 위반 피해자의 구제 및 배상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유엔 피해자 권리결의)'와 '국제형사재판소의 절차 및 증거에 관한 규정(ICC 절차 규정)'이 있다.
한국의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이런 국제기구의 권고와 규범에 입각해, ①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②진상규명 ③국회결의 사죄 ④법적 배상 ⑤역사교과서 기록 ⑥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즉 추모사업 ⑦책임자 처벌을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는 이중 핵심 사안인 책임 인정과 사죄, 배상이라는 세 가지를 수용한 점에서 이전의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공개 합의에서 성노예 표현 자제, 소녀상 이전 노력, 해외 소녀상 설립 자제, 정대협 반발 자제를 한국 쪽의 이행 의무 사항으로 넣으므로써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상한 합의가 됐다. 더구나 역사교과서 기록과 추모사업 등은 전혀 들어 있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