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타이완을 거쳐 3일 밤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무릅쓰고 2일 밤중에 타이완에 착륙해 일정을 소화한 직후였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이 보도된 7월 19일 이후로 중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6일에는 중국 국방부가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화상으로 열린 28일 미중정상회담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불장난하면 반드시 자신이 불에 탄다"고 위협했다. 29일에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이 트위터에 "펠로시 의장이 탄 항공기를 내쫓거나 격추할 수 있다"고 썼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가는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다. 대통령과 상원의장(부통령)에 이어 의전 서열 3위인 펠로시가 타이완 방문을 강행하면 중국이 실제로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이런 정서가 타이완 주변에서 확산됐다는 점은, 펠로시가 타이완에 들어가고 반나절 정도 지난 뒤의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타이완 자취안 지수, 상하이 종합지수, 선전 성분지수, 홍콩 항셍지수 같은 중화권 증시나 한국 코스피·코스닥과 일본 닛케이가 지난 2일 약세를 보이다가 3일 오전에 안정세를 보인 사실은 동아시아 투자자들이 중국의 경고 메시지를 흘려 듣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펠로시 본인 역시 긴장했다는 점은 비행 경로에서 나타난다. 인민해방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남중국해 상공을 피해 인도네시아·필리핀 영공을 거쳐 타이완에 들어갔다. 그 역시 중국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던 것이다.
리덩후이 총통 방미 후 벌어진 일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995년부터 이듬해까지 벌어진 상황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그해 5월 22일 미국이 리덩후이(이등휘) 타이완 총통의 개인자격 방문을 허용하자, 미국이 타이완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했다는 판단하에 중국은 강경 대응에 착수했다.
6월 7일 러덩후이 총통이 미국에 들어가자, 중국은 같은 달 19일 주미대사를 소환했다. 2개월 뒤인 8월 15일에는 타이완해협(대만해협)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날 시작된 위협적인 군사훈련은 열흘이 지나서야 종결됐다.
중국은 이듬해인 1996년 3월 8일 타이완 인근을 향해 탄도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실험 명목이지만, 위험했다. 미국도 그렇게 느꼈다는 점은 이틀 뒤 항공모함 2척을 타이완해협에 급파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이 같은 긴장 상태는 7월 6일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베이징을 방문한 뒤에야 완화됐다. 이 방문이 중국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미중관계 개선을 위한 회담을 갖기 위해 곧 북경을 방문할 것이라고 미 행정부의 한 관리가 1일 밝혔다"는 6월 3일자 <동아일보> 2면 중간 기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덩후이 방미로 인한 후유증을 수습하는 데 1년 넘게 경과됐던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로 북핵 위기를 간신히 봉합한 클린턴 행정부였다. 그로부터 7개월 뒤에 시작된 리덩후이 사태로 인해 클린턴은 1년 넘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내야 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세계 각국이 반드시 떠받들어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별 실익도 없이 일부러 그 원칙을 건드려 분란을 일으킬 필요도 없는 게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 사례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해 명분뿐 아니라 국익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중국에 대해 험악한 발언을 내쏟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그 점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펠로시의 여행을 말리고자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계획을 밝힌 다음날인 7월 21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방부는 당장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다"는 우회적 표현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군부의 의견을 빌려 자기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상당수 미국인들은 바이든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펠로시의 방문이 불필요하고도 무모하다는 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적대 전선이 형성돼 있는 마당에 미중관계까지 전쟁 국면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시점에서 타이완과 중국의 양안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진핑을 돕는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올 가을의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계기로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진핑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게 됐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시진핑이 대외 위기를 활용해 장기집권 발판을 마련하기가 수월해졌다는 시각이다.
펠로시는 바이든의 조언뿐 아니라 반대 여론도 경청하지 않았다. 결국 타이완 방문을 결행했고, 바이든은 딱히 저지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바이든(1942년 생)보다 두 살 많은 펠로시가 대통령의 리더십을 가벼이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같은 민주당 소속인 펠로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은 바이든이 당내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펠로시의 개인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