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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경의 입양아동을 원하시나요?

'예상과 다른 아이'를 자녀로 맞이 할 때 겪는 혼란

등록 2022.08.29 14:48수정 2022.08.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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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실패하지 않는 건강한 입양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입양의 구석구석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기자말]
원하는 배경의 입양아동이 있으신가요?
어떤 히스토리이면 자녀로 맞이하실 건가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정말, 왜 입양을 선택하시는 건가요?

간혹 입양한 아이의 히스토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롭다는 상담을 하게 된다. 입양 전에 들었던 정보와 입양 후에 건네 받은 서류 속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내용이 완전 다르다기보다 입양 전에는 간략 버전으로 들었던 내용을 입양 후에 상세 버전으로 접한 경우가 많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내용이 끔찍한 경우라는 것이다.

내 예상과는 다른 자녀가 온다면
 
 아동
아동픽사베이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상상을 하게 되는가. 이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원치 않는 임신'의 버전은 수천 가지, 수만 가지가 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경우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가 일부러 숨겼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입양 허가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에게 내밀한 역사를 다 까발리는 것이 아이의 인권을 지키는 일일까 생각해본다. 상세히 말해주었다면 입양을 과연 진행했을까, 아이를 자녀로 받아들였을까.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은 건강, 재산, 학력, 심리적 건강성, 범죄 이력 등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이 필요한 낯선 아이를 내 가족으로 맞아들일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이 준비는 생각보다 길고 힘겨운 여정일 수 있다. 입양을 선택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러 스펙이 입양을 하기에 충분하다 해도 '배경을 잘 모르는', '내 예상과 다른' 아이를 자녀로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은 또 다른 영역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스펙일 수 있겠다. 처음부터 준비된 가정은 없기에 여러 교육과 상담, 성찰과 고민 등을 거치며 '어떤 아이가 오든 우리에게 허락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야말로 입양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비로소 부모가 되는 때이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직업을 가졌을수록, 혹은 종교를 가질수록 아이의 배경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생부모의 배경이나 입양 결정까지의 히스토리가 자신들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삶인 것이다. 그런 '나쁜 사람'들로부터 온 아이 역시 '나쁜 DNA'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뒤흔드는 것 같다.

처음 입양을 결정한 부모들, 특히 삶을 곱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이들에겐 아이의 히스토리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이의 히스토리와 존재 가치는 별개라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땅에 왔건, 어떤 부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이건 그 아이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가치를 지닌, 사랑받아 마땅한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중한 존재

아이의 출생배경에 가치판단을 하며 아이에게 불안을 투사하는 어른은 아이의 입양 부모가 되기 힘들다. 혼탁한 세상에서 손을 내미는 듬직한 어른으로 서기도 힘들 수 있다.

내게 온 아이가 '예상치 못한' 히스토리를 가졌다면 부모 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딱 하나이다. 아이에게 '그럼에도 너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새겨주는 일이다. 네가 어떤 상황에서 태어났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왔던 너의 존재 가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우린 끝까지 네 편에서 너를 사랑할 것이라는 그 사실 하나이다.

우리 집 세 녀석의 히스토리도 아름답지 않다. 그런 내용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비참하거나 거칠거나 어이없거나 애통한 상황을 거치면서도 그 고유한 생명력을 잃지 않은 채 우리에게 온다.

그 모든 배경은 아이의 맑은 영혼을 해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 귀한 존재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낮춘 채 환하게 웃어줄 수 있는 이들이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입양아동 #공개입양 #입양절차 #예비입양부모 #입양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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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저자, 가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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