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반찬가게 '늘찬' 개업한 왕정옥·송금자·송재임씨
월간 옥이네
"어렸을 때 엄마가 웬만한 음식은 다 집에서 해주셨어요. 짜장면, 탕수육, 감자탕, 샌드위치, 파스타... 전 모든 집이 다 그런 줄 알았어요. 하하."
왕정옥씨의 막내딸 송재임씨는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 맛있는 음식을 우리 가족만 먹을 수 있다니. 엄마의 손맛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송재임씨는 엄마와 함께하는 반찬가게를 꿈꿨다. 직장생활 틈틈이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전에 사는 큰 언니도 야금야금 설득했다. 군서면 오동리가 고향인 두 자매는, 종종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니던 읍내 공설시장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홀린 듯 입찰을 신청했다. 그렇게 7월 16일 반찬가게 늘찬을 열었다.
"딸들이 그날그날 반찬을 만들면, 저는 옆에서 거드는 식이에요. 다만 손이 많이 가는 김치는 제가 다 담그지요. 열무김치, 겉절이 이런 것이요. 딸들이 워낙 제 음식을 좋아해 줘서 시작한 일인데, 다들 맛있다고 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네 딸을 키운 것이 '엄마의 도시락'이라면, 엄마의 손맛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 것도 '네 딸의 도시락'이다. 왕정옥씨는 딸 넷을 키우며 요리 솜씨가 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냐며 웃는다. 도시락을 싸면서 만들어보지 않은 반찬이 없을 정도다.
"어느 날은요, 도시락을 싸고 나면 기운이 쪽 빠졌어요. 날 밝을 때 반찬을 시작해도 도시락 네 개를 다 싸놓으면 금방 밤이 됐죠. 그래도 그땐 그 고민이 재밌었어요. 뭘 싸줄까, 뭘 맛있어하고 좋아할까 고민하는 거요."
반찬가게를 시작한 지금, 왕정옥씨의 그때 그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이제 함께하는 두 딸이 있어 훨씬 풍성하고 즐겁게 식단을 꾸리고,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왕정옥씨의 도시락이 네 딸의 '날개'였던 것처럼, 왕정옥씨에게 두 딸 역시 자신을 훨훨 날 수있게 하는 '날개' 같은 존재라고.
"옆을 보면 딸들이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해요.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옆에서 딸들이 용기를 주고,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해주니까 마음먹은 거죠."
요리뿐만 아니라 손재주가 좋고 창의력이 있는 막내딸 송재임씨가 가게 운영 전반을 맡는다. '늘 옹골찬 맛'을 선보이자는 뜻으로 '늘찬'이라 붙인 가게 이름도, 늘찬을 상징하는 정겨운 로고도 그의 솜씨다. 엄마를 닮아 손맛이 좋은 큰언니 송금자씨는 부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제철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날씨에 맞는 반찬으로 구성돼 더 인기를 끄는 '오늘의 메뉴'는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골똘히 논의한 결과물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계절의 맛을 최대한 느끼게 하는 식이에요. 제철 식재료 소비는 농촌과 시장에도 활력이 되고, 사람들의 입맛도 돋울 수 있죠. 날씨에 맞는 메뉴는 식탁을 더 재미있게 만들 테고요."
개업 전 집기를 들여놓고, 시장 조사를 위해 매일 같이 시장을 드나들며 공설시장의 매력도 알게 됐다. 부지런한 상인들의 모습과 분주한 손님들의 모습이 삶에 강한 활력을 준다는 것. 이 같은 활력이 언젠가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생겼다.
"반찬 가게의 장점은 자취생도, 워킹맘도, 어르신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지요. 장사한 지 3일(7월 19일 기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관심 가져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가게 덕분에 시장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오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초보 장사꾼'이 바라본 시장은 아직 다른 세상처럼 낯설지만,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의 삶의 무대라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진다. 그래서 세 모녀가 늘찬을 개업하며 세운 첫 번째 목표는 시장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직 정신없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옆 가게들을 보며 생각해요. 언젠가 우리도 공설시장 '베테랑'이 되겠지? 그때까지 '늘 옹골찬 맛으로' 잘 버텨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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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옥이네 통권 62호(2022년 8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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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안하겠다던 딸, 장사꾼에게 반하고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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