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해수관음상 모습
김성호
다낭 너른 바다를 굽어보는 초대형 관음상
린응사 해수관음상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이 절을 설립한 이가 바다에서 죽다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트피플 생존자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뒤 거금을 내어 다낭 땅에 절과 바다를 굽어보는 해수관음상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베트남 관광지인 다낭은 과거 보트피플의 주요 탈출로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 바다에 배를 띄우고 어디로든 탈출하려 했던 사람들이 이곳 미케비치(My khe beach)를 통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미케비치의 보트피플 사망자는 어느 자료든 1만 명을 상회합니다.
보트피플이 무엇인가요. 남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여야 했던 베트남인들, 또 타지에 흘러들어와 온갖 차별을 견뎌야 했던 화교들, 공산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은 식민지 및 남베트남 정부 협력자들의 역사가 보트피플의 비극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년 간 남베트남에선 최대 400만 명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는 태국, 남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북으로는 홍콩 등지로 탈출해 서방세계로 망명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탄 배는 제대로 된 동력도 없고 물자도 없어서 극한의 상황에 처하기 일쑤였습니다. 바다 사정이 안 좋으면 배가 뒤집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목적한 대로 미국이나 영국으로 망명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에서 출항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보트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