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Morrison, unsplash
Nick Morrison
책상에 앉는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은 게 언제였더라? 추석 때 비행기를 타야 해서 아이의 신분증인 등본을 발급받아 인쇄했을 때다. 그 전에는, 어린이집 보육료 결제를 위한 공인인증서를 다운받느라고 컴퓨터를 켰다. 그 전에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었지. 아이가 자는 시간을 피해 도둑처럼 방에 들어가 할 일만 냉큼 해치우고 나왔더랬다.
내가 이 책상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신혼 가구를 보러 다닐 때, 예산 범위를 다소 벗어나는 아카시아 원목 책상의 가격에 남편이 주저하자 '내가 이 책상에서 일 많이 해서 책상 값 금방 뽑을게!'라고 큰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은 일도 많이 했던 책상 그리고 컴퓨터지만, 지금으로는 안팎으로 먼지만 잔뜩 쌓였다.
막연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PC카톡에 로그인해본다. 단톡방 두 군데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육아방' '지역맘'
아이 등에 올라온 트러블이 수족구의 증좌일지 묻는 질문. 새로 산 아기 소파가 만족스럽다는 후기. 국민 문짝
이제 들이기에는 좀 늦었을까요? 뭐 그런 이야기들. 1년 전의 나였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 했을 대화에 자연스레 끼어 본다. '수족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책상 서랍을 열어본다. 직장을 다닐 때 쓰던 USB와 도장, 각종 노트와 외장하드 몇 개가 들어 있다. 이제는 의미가 없어진 오래된 영수증, 서류 들을 버린다. 언젠가 고쳐서 쓰려고 놔두었던, 망가진 수정테이프도 분리수거해 버렸다. 분홍색 플라멩고 장식이 마음에 들어서 잉크심을 갈아 쓰려고 했었던, 다 쓴 펜도 버린다. 벌써 몇 년째 그 안에 들어 있었던 것들이다. 이게 다 뭐라고.
삼진디아제팜정2mg(디아제팜)
1일 1회, 1회 1정씩, 7일간 복용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증상 완화
몇 가지를 비워낸 자리에는 지난주 병원에서 받아온 약봉투를 넣어뒀다. 복약 안내문을 고이 접어 부적처럼 봉투 속에 끼웠다. 언제든 힘들면 이걸 먹을 수 있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