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사진.
반올림
"내 딸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어요.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더라도 내 딸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진 않았을 거예요."
2007년 여름, 다산의 박진 활동가와 나는 동서울터미널 다방에서 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뵈었다.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한다고 소개한 아버님은,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며 쉬지 않고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딸 유미와 2인 1조로 일한 동료도 똑같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 삼성에 산재처리를 요구하자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며 조롱받은 이야기. 남은 치료비 4000만 원을 보태주기로 해놓고 500만 원으로 끝내자 했다는 이야기. 백혈병이 재발해 2007년 3월 6일 아주대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유미씨가 아버님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
당시 박진 활동가는 이 문제를 대책위를 만들어 풀었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동안도 삼성의 여러 대책위를 제안한 다산이었지만 이번 문제를 임하는 태도와 결의는 남달랐다. 이 싸움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청정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 문제를 밝히는 문제였다. 또 2인 1조 작업자 둘 다 백혈병에 걸렸으니 또 다른 피해자들의 존재를 암시하였고 긴 싸움을 예고했다.
피해자들의 제보는 조금씩 계속 이어졌다. 한 명 한 명 기막힌 사연이 모이고 분노와 억울함도 켜켜이 쌓여갔다. 산업재해 인정을 받는 투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황유미의 죽음은 이 사건을 제기한지 7년만인 201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산업재해로 공식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