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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무노조 삼성'의 역사는 이렇게 무너졌다

[다산인권센터 창립 30년] 반올림, 삼성노동인권 투쟁에 진심이었던 다산인권센터

등록 2022.10.04 09:40수정 2022.10.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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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 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은 처음 노동조합에서 시작되어 반올림으로 이어졌다. 연결의 지점엔 삼성노동인권 문제가 있었다.

2003년, 20대 후반에 얻은 첫 직장으로 나는 수원에 있던 경기지역일반노조 법규담당자로 일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세계 이마트 용인 수지점에서 일하는 계산원 언니들이 노조설립 상담을 의뢰했다. 차별과 멸시, 낮은 임금을 받아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민 끝에 나도 4개월을 마트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2004년 겨울, 용인수지점 분회 설립 후 일주일 동안 세상이 뒤집어 진 것만 같았다. 본사에서 직접 노조를 없애기 위해 보안요원, 임원들이 총 출동했다. 전국에서 파견 나온 슈퍼바이저(SV)들이 계산대를 차지했고, 수지점 계산원들은 노조탈퇴서를 쓸 때까지 면담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나는 화장실까지 무전을 들고 온 보안요원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고 수치심을 일으키는 면담을 받았다.

분회장 언니의 차량에는 흰색 소나타 미행차량이 붙었다. 남편이 삼성에 다니던 언니는 "남편이 상사에게 불려갔는데 노조탈퇴를 하지 않으면 남편이 구조조정 1순위가 된다"며 눈물을 머금고 탈퇴를 하였다. 23명이던 조합원은 회사의 강압에 못 이겨 일주일 만에 19명이 탈퇴하고 4명만 남았다. 4명은 결국 다 해고되었다. 그러한 일을 겪고 몇 년은 트라우마로 자꾸만 갇히는 꿈에 시달렸다. 당시는 세상에 가장 심각한 일이 그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다산인권센터를 알게 되었다. '신세계 이마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감금미행, 노조파괴 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노영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가 맡았다. 우리 분회가 당한 끔찍한 인권탄압에 대해 알리고 힘껏 연대하겠다고 했다. 그때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산인권센터는 우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인권"이란 가치로 재해석하고 큰 위로를 주었다. 그게 다산이란 곳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황상기님과의 만남, 반올림의 시작 

그 뒤에도 다산인권센터는 삼성 노동인권 문제에 주목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왔다. 박진 활동가의 제안으로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울산, 천안 등으로 전국 순회투쟁도 하고, 삼성바로보기 문화제도 하면서 부당한 지배력과 노동자를 옥죄는 무노조 인권탄압 문제를 알려나갔다.


지금은 삼성에 민주노조가 생겼고 이런저런 활동들에 큰 제약이 없지만 당시는 삼성 앞에서 1인 시위만 해도 요란하게 경찰이 출동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지던 때다. 이기기 위해 싸운다기보다 불의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선언이 전부였던 싸움들이 계속되었다.

삼성의 핸드폰 위치추적 감시 진상규명 공대위,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정리해고 투쟁, 에버랜드 무용수 산재 대응 공대위 등 다산인권센터와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계속하여 함께 연대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수원시민신문 기자의 소개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23세)의 아버지 황상기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는 결국 2007년 11월 20일 반올림(당시 대책위) 발족으로 이어졌다.
 
 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사진.
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사진.반올림
 
"내 딸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었어요.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더라도 내 딸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진 않았을 거예요."


2007년 여름, 다산의 박진 활동가와 나는 동서울터미널 다방에서 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뵈었다.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한다고 소개한 아버님은,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며 쉬지 않고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딸 유미와 2인 1조로 일한 동료도 똑같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 삼성에 산재처리를 요구하자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며 조롱받은 이야기. 남은 치료비 4000만 원을 보태주기로 해놓고 500만 원으로 끝내자 했다는 이야기. 백혈병이 재발해 2007년 3월 6일 아주대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유미씨가 아버님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

당시 박진 활동가는 이 문제를 대책위를 만들어 풀었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동안도 삼성의 여러 대책위를 제안한 다산이었지만 이번 문제를 임하는 태도와 결의는 남달랐다. 이 싸움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청정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 문제를 밝히는 문제였다. 또 2인 1조 작업자 둘 다 백혈병에 걸렸으니 또 다른 피해자들의 존재를 암시하였고 긴 싸움을 예고했다.

피해자들의 제보는 조금씩 계속 이어졌다. 한 명 한 명 기막힌 사연이 모이고 분노와 억울함도 켜켜이 쌓여갔다. 산업재해 인정을 받는 투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황유미의 죽음은 이 사건을 제기한지 7년만인 201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산업재해로 공식 확정되었다.
 
 2017년 3월 6일 고 황유미씨 추모 주간을 맞아,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부터 수원 시내를 방진복을 입고 행진함.
2017년 3월 6일 고 황유미씨 추모 주간을 맞아,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부터 수원 시내를 방진복을 입고 행진함. 반올림
 
다른 피해자들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삼성의 책임을 묻는 투쟁이 크게 벌어졌다. 2015년 10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24시간 노숙농성이 이어져 왔다. 실로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결국 11년만인 2018년 11월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공개사과와 피해자 보상, 재발방지대책의 중재협약으로 투쟁은 일단락되었다.

이 길고 긴 싸움 동안 다산인권센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왔고 앞장서왔다. 특히 집회나 문화제, 선전전 등 직접행동을 할 때 다산은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눈에 띄는 퍼포먼스 제안도 많이 했다. 각종 행사의 사회도 도맡았다. 시민을 만날 때는 거리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데 수원촛불 등 지역에서 항상 무언가를 시민들에게 알려온 다산의 도움이 컸다. 다산의 자원 활동가로서 반올림 활동을 하며 일인시위, 문화제 등 무수한 활동사진을 남긴 '오렌지가 좋아(고 엄명환)'님과의 각별한 인연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다산이 삼성 노동인권 투쟁에 진심이었다는 점은 2011년에 작성된 다산인권센터 홈페이지 소개글 중 나오는 "삼성노동기본권 침해 대응활동"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런 뜨거움으로 다산은 2013년 삼성노동인권지킴이(SLW)를 발족시켰고, 삼성 에버랜드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투쟁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힘껏 연대해 왔다.

다산이 보여준 운동의 힘
 
 2018년 7월 23일, 삼성과의 중재협의 약속이후 삼성서초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을 철거하며 반올림농성장지킴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연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함께 걸어와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18년 7월 23일, 삼성과의 중재협의 약속이후 삼성서초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을 철거하며 반올림농성장지킴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연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함께 걸어와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반올림
 
80년 반인권의 삼성무노조 역사는 끝없이 저항해온 노동자들과 다산과 같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끝이 났다. 다만 삼성은 노동시간, 안전권 등 기본 노동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조를 세워 현장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힘을 믿지만 그에 더하여 부당한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의 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글을 빌어 경고해본다.

다산인권센터 30년, 삼성 투쟁을 함께 온 이들에게는 너무도 든든한 시간이었다. 이런 다산인권센터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업권력 감시, 노동인권 옹호활동에서 다산이 보여준 운동의 힘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종란님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무노조 #삼성 #반올림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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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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