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신발.
pexels
임신을 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실로 임신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임신의 상징처럼 알고 있는 입덧이 임신 초기에 집중된다는 것, 사람마다 정도 차가 커서 아예 겪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물조차 못 마실 정도로 심하게 겪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엄청나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임신을 했으니까.
나는 후자에 가까운 임산부였고 임신 초기 석 달 간 거의 먹지 못하고 누워 지냈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한 알에 1500원 안팎인 입덧약을 하루 최대 용량인 4알씩 먹었고 그러면 그나마 덜 토했다.
뿐만 아니라, 임신 초기에는 각종 호르몬이 요동쳐 그야말로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이유 없이 계속 우울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불안하고, 절망적이고, 심지어는 죽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임산부 사망 원인의 10%가 자살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숭고하고 참혹했다. 괴로웠다.
어쨌거나 살아 있으면 살아지고 시간은 흐르는 법. 죽을 기운이 없어 죽지도 못하고, 먹을 수 있는 약도 없이 '쌩으로' 버텨내야만 했던 지옥 같은 2~3개월이 지나자 좀 살만한 시기가 왔다. 임신 15주가 지나자 그래도 집밖에 나갈 수 있었고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제대로 된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자주 숨이 차고, 관절이 아프고, 튼살과 각종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방광이 짓눌려 화장실에 자주 가고, 변비가 오고... 임신의 흔한 증상들을 나도 물론 겪었지만 그건 초기의 '개고생'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로소 먹고 싶은 것도 좀 먹고, 임산부 요가도 다니면서 활기찬 임신 중후기를 보냈고 건강한 남자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우울증 병력이 있고, 임신 초기에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했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도 걱정이었다. 산후의 우울감 내지 우울증은 정도 차가 있지만 대부분의 산모가 겪는 것이기 때문에, 증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심했다.
다행히 아기는 순한 편이었고,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른 남편은 시간이 많았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 베테랑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산후 회복에 집중하며 무사히 그 시기를 넘겼다.